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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작품들의 모순(矛盾) : 신선함의 창&공감의 방패[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24. 1. 8. 01:58
독자 여러분들은 살아오시면서 ‘모순(矛盾)’ 이란 단어와 표현을 굉장히 많이 접해 오셨을 겁니다.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뚫는 창과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막아내는 방패를 파는 상인의 이야기. 아 그래서 그 창과 방패가 서로 맞붙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나요? 말 그대로 명제 오류가 발생해서 답이 나올 수 없는 자가당착 딜레마에 빠지는 유명한 이야기죠. 그래서 일상 생활에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논리가 어긋난 일들, 이전에 있었던 사건이 지금 와서 왜곡된 사태 등등을 우리는 보통 ‘모순이다, 모순되었다’라고 익히 표현합니다.
아니, 삽화에서는 방패가 이겼는데?! 저는 또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봐오면서, 인류가 아마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아마도 AI도 못 해먹을 숙제 중 하나가, ‘최고로 성공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밌다’는 수학처럼 공식이 나올 수 없고, 망치기는 쉬워도 성공하기는 어려운 것이 창작입니다. 분명히 제작 중에는 재밌었는데, 결과를 까보고 나니 너무 재미가 없더라, 눈과 귀는 역대급으로 호강을 했는데, 내용이 없어서 인기는 부진했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너 말이야 너! 너 이야기 하는거라고!!!!! 엉엉... 그런데 작품의 비평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것이 공식은 절대 아니고, 또한 진리의 발끝조차도 미치지 못한다고 겸손히 말씀올립니다만, 그럼에도 저 스스로 여러 작품을 보면서 무언의 ‘성공하는 기법’에 대해서 은근히 잘 들어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순의 활용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모순’은 위에서 말씀드린 ‘아이러니’, ‘패러독스’의 모순이 아닌, 정말 단순한 ‘창’과 ‘방패’의 뜻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신선함이란 이름의 창], [공감이란 이름의 방패]로서 말이죠. 또한, 신기하게도, 신선함과 공감은 서로 정반대에 있는 개념이며, 공감가는 신선함, 신선한 공감 같은 것은 말 그대로 논리 오류가 나는 표현이 됩니다.
당연한 말을 하면 논리 오류는 없습니다.(끄덕) 여담이지만, 여러 병장기 중에서 굳이 창과 방패를 골랐냐 하면, 인류의 ‘정형화되고 철학이 담긴’ 그리고 ‘본격적인’ 예술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그 시절에도 통용되었던 방법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거기에 기존에 있던 표현인 ‘모순’과도 딱 들어맞구요. 또한, 여기서 신선함에 동반되는 형제 키워드는 [새로움], [특이함], [카오스(Kaos)], [무(無)로의 시도(試圖)], [전위(前衛)의], [나아가는] 등을 들 수 있겠고, 공감에는 [익숙한], [코스모스(Kosmos : 질서, 조화)], [유(有)의 재조합], [후위(後衛)의], [루틴], [받아들이는] 등을 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나아가는 직선의 개념이 강한 ‘창’과 받아들이는 면의 개념이 강한 ‘방패’이기에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절부터 쓰인 유구한 전통의 병장기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창과 방패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숙련자’까지 있어야 이 논리는 완성됩니다. 바로, 작품내에 ‘신선함’과 ‘공감’을 적절히 배합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그림체나 연출 또한 신선한 그림체, 기존에 알고있는 그림체, 신선한 연출, 기존에 알고 있는 연출 등을 황금비율로 담아내서 튼튼한 근육으로 이 병장기들을 잘 휘두르는 감독 또는 제작진들이 이름을 날린 작품을 냈으며, 둘의 밸런스가 어중간하게 맞지 않으면 필패의 공식을 써내려 간다는 무언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창 좋은 방패가 있어도 이 정도 휘둘러야 전장에서 이기는 법이죠 가장 쉬운 예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들겠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현대 대한민국 사회가 담고 있는 현실 중 일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시작부터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냅니다. 제작진이 창과 방패를 든 병사라면, 관객은 그 병사에게 공격해 갈 불특정 다수의 존재들입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관객들을 일단 공감의 방패로 막아내고, 반격의 준비를 합니다. 마침, 영화에서는 아주 신선한 방식으로 반지하 가족이 부잣집 안으로 스며들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밀실에 몰래 살고 있던 리스펙 아저씨를 발견한다던지 등으로 정말 상상치도 못한 신선한 연출과 스토리 전개방식으로 뒤통수가 얼얼해집니다. 이미, 봉준호 감독의 신선한 창으로 머릿속이 꿰뚫린 것처럼 영화에 푹 빠져 듭니다.
신선함과 공감을 넘어서 스토리텔링 자체가 굉장히 쉽게 다가옵니다. 이게 바로 병장기를 다루는 자의 역량 그럼 실패한 예시를 봅시다. 작년 초에 나온 게임 [포스포큰]을 보도록 하죠(PC주의에 관한 건 일절 노코멘트 할 겁니다. 단순히 스토리텔링과 연출만 언급할 겁니다). 주인공이 이 세상에 무언가 불만이 많고, 타인에게 예의와 소통 자체를 논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세상을 욕하면서 브랜드 운동화를 훔치고, 여행가방엔 출처를 모를 지폐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 이런 전개가 왜 나와야 하는지에 대한 빌드 업이 없다 싶이 하고 져스트 청설모 마냥 잣이나 까 먹는 모습을 보여주니, 플레이어들의 그 어떤 공감도 받지 못 하고, 게임 몰입에 실패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기대를 아쉽게 만드는 작품이 많을까요... 자, [포스포큰]이야기에서 이 모순기법에 대한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공감을 얻지 못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신선하다’라는 뜻으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공감한 적도 없고,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 했기 때문에’로도 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바로 반박이 가능한데, 신선함과 공감은 단순히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 단순히 있던 것을 표현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비유하자면, 본인에게 다가오는 존재들을 창과 방패로 막아내고 찔러야 하는데, 단순히 창과 방패를 늘어뜨려 놓고 본인은 앉아만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은 창 나름대로의 ‘창술’이 있을 것이며, 방패도 단순히 들고 있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무기를 들었는지, 동물계인지, 괴물인지, 마법을 발사하는지, 또 내 방패의 크기는, 모양은 어떤지 등등을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방패를 들고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실제 작품에서 [반전], [복선], [빌드 업], [암시], [외적연출], [기승전결] 등등의 키워드로 소개해 드릴 수 있고, 이러한 행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으른 작품이나 착각에 빠진, 또는 제대로 놓친 작품들은 신기하게도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 합니다.
서사에 몰입을 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단순히 좋은 창, 좋은 방패를 들었다고 다가 아니고, 상황에 맞는 창과 방패를 고르는 것, 그리고 그 창과 방패를 아킬레우스나 여포와 같이 무신(武神)이라 불릴 정도로 잘 다루는 역량의 삼위일체만이 성공하는 길에 확실한 파이를 차지한다고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비가셋(Ebigaset). 네, 아버지가 세 명이란 뜻입니다. 물론, 극단적으로 창을 또는 방패를 다루는 영역도 있죠. 이 또한 무시를 할 수 없습니다. 먼저, ‘아방가르드(Avant-Garde)’같은 경우는 상단에서 말씀드린 신선함의 형제 키워드 [전위]이죠. 이걸 영어로 하면 여러분도 익히 들어보셨을 ‘뱅가드(Vanguard)’가 되며, 쉽게 풀면 ‘선봉’, ‘탱커’, ‘최전선’ 같은 개념으로 아시면 좋습니다. 다들 아방가르드 아방가르드 들어봤는데, 여기서 아주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아무도 아직 시도해 보지 못한 부분을 표현해 내는 예술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방가르드 같다’, ‘아방가르드식’ 이란 수식어들이 붙은 작품들을 보면, 굉장히 특이하거나 낯설거나 합니다. 당연하지만, 예술의 ‘최전선’에서 그 누구도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무의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순기법에 비유하자면, 방패를 버클러 마냥 아주 작게 잡아 기동성을 높이거나, 그냥 방패를 버리고, 기마대를 저지하는 최전선의 장창병 같은 그런 느낌으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비겁하게 눈뽕이라닛!!! 공감만 극대화한 방패수(防牌手) 같은 작품들은 주로 ‘다큐멘터리’, ‘연애장르’, ‘스탠드업 코미디’ 등이 있습니다. 실제로 방패는 단순히 막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기로도 쓸 수 있는 버전이 있거나, 방패 안쪽에 단검 같은 암기를 숨길 수 있는 버전들도 존재 합니다. 이러한 크나큰 공감의 충격 중 제일 유명한 것이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알고 있는 감정이기에 웃음과 울음, 분노 등의 감정을 일깨우고, 배설할 수 있게 하죠. 근데 여기서 제가 왜 공감은 창으로 표현을 하지 않고, 신선함을 방패로 표현하지 않았냐면, 창 한 자루는 방어목적으로 쓰이는 파이가 굉장히 소수지만, 방패는 공격으로도 쓸 수 있는 점에서, 공감을 극대화하는 작품들에는 일단 필연적으로 신선한 부분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신선한 부분은 ‘창’의 신선함 보다는 [변주]라는 키워드를 이용해서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멜로 이야기라도, 분명히 먼저 나온 A작품, 나중에 나온 B작품 다 공감가는 로맨스 무드이지만, 배우가 다르고, 설정이 다르며, 폴 인 러브의 과정 직전까지 A작품의 [변주]와도 같은 느낌으로 넣어야 작품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변주가 없으면? 아, 그건 ‘저작권 위반’ 이지요!!!!
예외 : 모든 것을 초월한 피지컬 이렇듯이, 이 논리법은 한 예시, 한 예시 다 적다간 거의 무한에 가까운 분량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추후 포스팅하는 작품들에서 가끔가끔 이 포스팅의 내용을 인용해서 쓸까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저는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해 나갈 거고요, 그 연구가 발전되는 대로 포스팅 하며 여러분과 의견을 공유해 볼까 합니다.
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포스팅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복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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