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마 인류사에 기록될 만큼 어마어마한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솔직히 이번 포스팅 주제를 [오디세이]로 쓸까 말까 고민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냥 압도적인 서사와 재해석, 화면 연출, 사운드 등, 무슨 말이 필요 하겠습니까. 거기에 이미 내로라하는 평론가 분들이나 권위자 분들이 거의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이 [오디세이]의 평론을 썼을 것이니, 제가 무슨 관점에서 평론을 해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교집합이 잡힐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포스팅을 [오디세이]로 정한 이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원전 “오딧세이아”를 ‘모순’이라는 조리법으로 요리한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제우스의 법’부터 그렇습니다. 낯선 손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손님 또한 주인의 호의를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약속인데, 외눈박이 거인이자 압도적인 비명으로 영화관 데시벨을 책임지는 폴리페모스는 이 법을 대놓고 무시한 채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정작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눈을 찔리게 되자, 자신이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며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를 벌해달라고 외칩니다. 폴리페모스가 단순히 신의 아들인 것 보다도, ‘같은 그리스 문화와 종교를 향유하는 존재’임에도, 제우스의 법을 너무나도 가볍게 지키지 않는 모순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 모순은 영화 연출상 오히려 복선으로 작용하는 모순이고, 그 복선의 정체는 트로이 전쟁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은 왕비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지만, 영화에서는 메넬라오스가 상처 투성이의 헬레네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을 통해 이것이 사실상 아가멤논의 무역로 확보를 위한 전쟁이었음을 드러냅니다. 헬레네는 명분이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이죠. 거기에 그 전쟁을 끝낸 방법이 또 트로이 목마입니다. 트로이인들은 목마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믿었기에 성 안으로 들여놓는데, 그 아테나의 이름을 팔아 성 안으로 들어온 그리스군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끝내 아테나 여신상의 목까지 쳐버립니다. 즉, 이미 오디세우스가 같은 문화와 신화, 종교를 향유하는 트로이에게 역설적인 신성모독과 규율 위반으로 승리를 쟁취했고, 그러한 모습을 폴리페모스의 모습으로 벌써부터 투영시켜 보여주는 장치로 보였습니다.

라이스트뤼고네스 거인족은 이 모순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여줍니다. 이들은 거대한 풀 플레이트 갑옷과 철제 무기를 두르고 있고, 마법인지 기계장치인지 나무를 움직이는 함정도 쓸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학살을 하고 배를 박살낼 때, 다들 행복에 가득찬 얼굴로 투구 속 얼굴이 보입니다. 이들의 목적이나 이유 등은 가히 추측도 안 될 정도 입니다(그나마 종족의 어린 소녀에게 까지 무거운 투구를 씌울 정도면, 여러 약탈자들에게 시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실실 웃으면서 학살을 자행하는 모습은 가히 [진격의 거인]을 연상시킵니다). 저는 이 장면을 현대에 대비해서 모순을 느끼게 되었는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죄책감이나 존엄성 등이 사라지는 모순을 생각했습니다. 이전의 전쟁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칼이나 창을 맞부딪히며, 상대의 죽음을 직접 목도했지만, 지금은 지하 벙커나 선실에서 미사일 버튼 하나로 레이더 상의 점들을 보며 일종의 ‘게임’하듯 더 많은 수의 적을 단시간에 죽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민간인들의 피해까지 보고 되고 있지만, 전쟁을 일으키는 당사자는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피해자들의 숫자는 그저 뉴스에 카운트 되기만 하는 숫자에 불과해지는 현실이 이 라이스트뤼고네스들을 마주한 현대인의 자화상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트로이 전쟁으로 오디세우스가 ‘영웅’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트로이 성벽을 무너뜨린 천재적인 책략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이라고 오디세우스를 노래하지만, 정작 오디세우스 자신에게 남은 것은 불타는 트로이와 학살,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전쟁영웅과, 자기 자신을 학살자라고 바라보는 인간이 한 몸 안에 같이 존재하는 것이죠. 전쟁터 밖의 사람들은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은 아가멤논과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낸 오디세우스의 ‘승리’에 열광하는 셈입니다.

아가멤논의 연출은 그래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의 그는 다른 병사들과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위압적인 갑옷을 두르고, 말 그대로 왕이자 영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갑옷을 벗고 집으로 돌아가면 갑자기 너무나도 평범하고 초라한 인간이 되고, 결국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죽는 것도 아니라 자기 집에서 허망하게 죽습니다. 무역로를 얻기 위해 거대한 전쟁을 일으킨 왕의 마지막치고는 너무 보잘것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아가멤논이 오디세우스에게는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언을 남깁니다. 모순된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모순되게 죽은 사람이 오히려 오디세우스에게 진짜 싸워야 할 명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칼립소의 섬을 떠나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신들의 뜻마저 이성으로 피해가려고 하던 오디세우스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정말 보잘것없는 뗏목 하나입니다. 거대한 함대도 없고, 병사도 없고, 기막힌 계략도 없습니다. 그냥 이제는 신들이 살려주면 살고 죽이면 죽는다는 듯 모든 것을 맡기고 이타카로 돌아갑니다. 저는 그 순간 오디세우스의 마지막 모순이 정리되었다고 봤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시작서 부터 모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평함"을 준다는 이유로 일부러 활 시위를 튕겨 경고음을 내, 사냥감이 도망가게 한 다음 사냥을 하는 모습. 사냥감은 정작 이게 공평하냐 아니냐를 논할 수도 없는데, 자기합리화의 모순이죠. 그리고 유력 가문의 자제이자 훗날 페넬로페의 구혼자 무리의 리더가 되어 집요하게 괴롭히는 '안티노오스'가 징병 추첨에 당첨되었는데도, 집안의 하인 시논에게 당첨 제비를 건네고 나가 가라 트로이를 시전하는데, 그걸 봤음에도 묵인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순. 사냥감에는 공평함을 준다면서 활시위를 튕기는 스윗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자신의 백성에겐 공평함 따위 아르고스에게 주고, 집안 빽을 우선시하는 모순을 보여준 것부터 시작이었을까요.

반대로 영화에는 끝까지 모순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페넬로페, 텔레마코스, 에우마이오스, 그리고 아르고스입니다. 묘하게 기독교 성경의 등장인물 ‘욥’과도 닮아있는 서사를 담고 있는 캐릭터 들이죠. 올바르게 믿고 끝까지 지킨다고 해서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믿음 때문에 더 많은 시험을 받지만 끝까지 버틴 사람이 마지막에는 보상을 받는 구조가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압박 속에서도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고, 텔레마코스는 목숨까지 위협받으면서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며, 에우마이오스는 왕이 사라진 뒤에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아르고스는 말 그대로 평생을 기다립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구혼자들은 입만 열면 ‘제우스의 법’을 이용하며 모순된 행동을 보입니다. 자신들은 손님이니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서 왕궁에 눌러앉아 재산을 축내고, 정작 같은 법으로 보호받아야 할 거지나 하인에게는 함부로 대하며, 심지어 그 집의 주인격인 텔레마코스에게까지 하대를 합니다. 제우스의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필요한 부분만 떼어다가 방패처럼 쓰는 셈인데, 이쯤 되면 폴리페모스와 방식만 다르지 하는 짓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구혼자들의 숙청은 트로이 전쟁과 같은 종류의 폭력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구혼자들 때문에 고통받으면서도 끝까지 믿음과 정의를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왕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을 구하고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은 적어도 트로이 전쟁처럼 모순된 명분으로 벌인 전쟁과는 다른 싸움입니다. 모순된 과거를 진심으로 참회한 후, 진짜 명분과 모순되지 않은 정의를 관철하여 진정한 왕이 돌아옴을 알리고 구혼자들을 숙청했을 때, 오디세우스는 이제서야 영웅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역시 놀란 감독답습니다. 텔레마코스와 페넬로페, 오디세우스의 현재와 과거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다가 점점 한 지점으로 모이는 방식은 [덩케르크]가 떠오르고,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과거와 죄책감을 계속해서 끄집어내는 부분은 [인셉션]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셉션] 코브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존재이기도 했던 꿈속의 멜처럼, 아테나 역시 실제 신이면서 오디세우스 자신의 죄책감을 비추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을 막는 방패 아이기스와 동시에 모든 것을 뚫는 창을 가지고 싸우는 아테나처럼,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와 잘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오디세이]는 모순의 항해라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원전인 “오딧세이아”자체가 단순한 한 인물의 영웅 서사시가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일대기’로도 해석되는 만큼, 우리의 삶도 돌아보면 우리 스스로 모순을 저지르며, 항로를 잃고 이곳저곳 해메는 과정이 없다고 하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이번 영화를 통해 진정한 인간찬가인, ‘모순된 과거를 받아들이고, 정의를 끝까지 관철할 때, 그 항해는 끝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모순된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참회했기 때문에 진정한 정의를 찾고 관철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메시지를 저 개인적으로 본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 >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극장판 치이카와-인어섬의 비밀] –독재, 민중, 그리고 영원 (1) | 2026.09.08 |
|---|---|
| [스파이더맨 : 브랜드 뉴 데이] –닥터 히루루크에 대한 반격 (2) | 2026.08.09 |
| [마이클] –이것은 내가 천마(天魔)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0) | 2026.07.08 |
| [스타워즈 :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작은 자들이 만들어 내는 커다란 파문의 스페이스 스파게티 웨스턴 (0) | 2026.06.18 |
|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 –작은 손으로 많은 것을 쥐려다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나가는… (0) | 20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