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H3pagKiHQU
2025년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성편]과 [극장판 체인소맨-레제편]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2026년 늦여름, 또 애니메이션 극장판이 일본에서 대히트를 쳤습니다. 2025년도와 다르게 액션도 아니고, 작화력 미치는 퀄리티도 아닌, “뭔가 작고 귀여운” [치이카와]의 극장판, [극장판 치이카와-인어섬의 비밀]이 흥행1등을 달리고 있습니다. 잠깐 [스파이더맨-브랜 뉴 데이]에게 한 주 정도 왕좌를 양보했지만, 바로 그 ‘스파이더맨’을 꺾고 다시 2026년 8월 말~9월 초에서 1위의 자리를 탈환하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들, 그것도 초등학고 저~고학년에 유치원생 정도 타겟으로 보이는, 동시기 [짱구는 못말려]의 새 극장판과 주타겟층이 겹쳐 보이는 이 치이카와의 돌풍은 주 타겟층을 넘어 어른 관객까지 매료시켰음이 분명하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평가가 심상치 않습니다. 치이카와를 볼 생각에 들뜬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일종의 싸늘함을 느끼고 나오거나, 공포영화 체험을 한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판의 미로]사태(?)를 연상시키는 코멘트들인데, 내용이 의외로 무겁고, 은유적이지만, 호러적인 묘사도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봤을 때는 직접적으로 19금 영화나 본격 공포 슬래셔 무비에서 볼법한 그런 묘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본래 원작자인 ‘나가노’작가는 이러한 귀여운 그림체 안에 사회풍자나 잔혹동화 이야기 같은 것을 즐겨 넣는 타입의 작가고, 원작의 내용을 거의 빼지 않고 가져온 이 극장판의 내용 또한, 그러한 테이스트가 잔뜩 함유되어 있으며, 원작자 본인이 극장판 제작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그림체라서 더욱 ‘갭’이 크게 느껴질 수도 있고, 또 이런 그림체라서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트릭키한 방법을 쓴 장면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확실히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기 충분한 스토리라인이었습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로 관람을 했었는데, 초반 부까지는 그저 평범한 치이카와 본편의 연속처럼 느껴지다가, “100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토벌의뢰”라는 (매우 수상한)전단지를 받고, 인어섬으로 치이카와가 동료들과 함께 떠나고, 섬의 풍요로운 풍경과 하치와레가 말아주는 [今日の日はさようなら](오늘은 이제 안녕)이라는 노래가 나오기까지, 꼭 동시기 개봉작 [짱구는 못말려]의 극장판 전개와 닮아 있어서 참 재밌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이렌이 ‘그저 천편일률적으로 묘사된 섬 주민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사실과, 세이렌 또한 같이 데리고 사는 크리처인 ‘인어’를 섬 주민 중 누군가가 잡아먹었다고,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야기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섬 주민들은 커다랗고, 힘이 세며, 노래로 식물을 조종하고, 섬을 풍요롭게 해주는 이방의 존재 세이렌에게 먹을 것을 바치며 숭배했고, 그렇게 섬에 눌러 앉은 세이렌은 인어들과 바다에서 놀다가 실수로 섬 주민인 ‘히토하(머리에 잎싹 한 개 붙은 주민)’과 ‘후타바(머리에 잎싹 두 개 붙은 주민)’이 타고 있는 낚시배를 실수로 부셔버려, 후타바가 중태에 빠집니다. 이에, 생물 도감에서 인어를 먹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히토하가 복수와 분노, 그리고 후타바를 살려야 겠다는 복잡한 심정으로 몽둥이와 과자를 가지고 가, [헨젤과 그레텔]처럼 인어 하나를 꼬셔 몽둥이로 죽여버립니다. 그 후, 일본 료칸의 가이세키 음식에서 볼법한 비주얼의 요리가 된 인어고기를 죽어가는 후타바에게 먹이고, 도감의 내용대로 후타바가 영생을 얻지만, 자신 혼자 살아남아 히토하의 죽음을 보기 싫다는 의견에 히토하도 억지로 인어를 먹고 같이 영생의 몸이 됩니다. 이에 인어 하나가 사라진 세이렌은 “본래 세 명일 때 화음이 잘 맞았는데, 한 명이 없으니 불협화음이 난다”라고 말하며 범인을 찾아 ‘영원히 바다 깊은 곳에 가두겠다’라는 형벌을 실시 하기 위해 마피아 게임 방불케 하듯, 주민들을 하나하나 납치해 스프로 만들어 먹으면서 범인 찾기를 실시 합니다.

주인공 치이카와는 우연한 계기로 이 히토하와 후타바가 범인인 것을 알았고, 그들의 친절, 외부인인 자신, 일을 더 크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 둘이 범인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이렌의 습격으로 동료들은 전부 납치당해 혼자 남았을 때, 대뜸 섬 구석에 ‘카레&조갯국’ 식당을 운영하는 “시마지로”아저씨를 만나 동료들을 구출합니다. 시마지로 아저씨는 작중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며, 세이렌과 수중전에서 조차 꿀리지 않고, 세이렌을 물리칠 비밀 병기 “졸로키아 고춧가루”를 넣은 카레로 세이렌을 퇴치하는 1등 공신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찰나의 순간, 세이렌은 범인을 찾았지만, 매운 카레로 도망치고, 섬 주민들은 세이렌을 격퇴한 것을 축하하며 축제를 열고, 치이카와 일행들은 주민들과 시마지로 아저씨에게 환호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에 여러가지 해석들이 나왔습니다. 먼저, 치이카와 일행들이 ‘손쉬운 고수익 알바’를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찾아 나서는 것에 최근 붉어진 해외 사기고용 납치 사건을 시사한다고도 하고, 도스트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린다고도 합니다. 누구나 피해자며, 누구나 가해자이고, 사적제재의 한계와 사법 및 치안시스템의 부재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참 재미난 부분을 생각했는데, 바로 ‘독재’와 ‘민중’, 그리고 인어를 먹으면서 얻는 ‘영생’과 세이렌이 주는 ‘영원한 형벌’ 등입니다. 종교적 키워드로도 잘 나오는 ‘영생’, 또는 ‘영원함’이라는 것이 과연 좋을 수만 있을까. 애꿎게도, 섬에 도착한 첫 날,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의 주인공 일행에서 하치와레가 대뜸 일본의 국민 곡 중 하나인 [今日の日はさようなら]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CZyEPMPcuU&list=RDEMX2F1weZNEp5mg8x_yd5b2A&index=2
언제까지나 헤어지는 일 없이 친구로 지내자
내일을 꿈꾸며 희망의 길로
(중략)
서로 믿는 기쁨을 소중히 하자
오늘은 이제 안녕. 다시 만날 날까지
(후략)
이렇게 그저 밤바다와 모닥불에 취해 부르는 노래처럼 연출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겪고, 섬 주민 모두와 같은 곡을 부릅니다. “영원히 친구로 지내며, 내일도 또 내일도 만나자”, “서로 믿는 기쁨”을 노래하는 이 곡의 의미가 처음과 끝이 180도 달라집니다(이 곡은 예전 [극장판 신 에반게리온 : 파]에서도 잔혹한 장면 연출에 쓰이더니 여기서도 비슷한 장치로 쓰이는…). 영원히 죄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며, 내일도 또 내일도 벌을 피하며 살아야 하고, 그 누구도 영원히 믿을 수 없는 저주에 걸린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꼬라지’가 왜 되어 버렸느냐, 그것은 저 개인적으로 ‘독재’와 그것을 대하는 ‘민중(=섬 주민)’의 태도가 보였습니다. 이를 의도한 것인지(‘나가노’작가의 테이스트 상 능히 그럴 법 한) 섬 주민들을 하나같이 몰개성하고, 회색빛으로 칠해 놓았으며, 그들의 얼굴 묘사 또한 모조리 생략되었습니다. 그저 홍조 효과나 팔 다리의 논 버벌 커뮤니케이션, 애니메이션 연출로 드러나는 언어가 없는 말풍선 대화 등이 시사하는 점이 재밌습니다. 개개인의 신념이나 자주의지보다도 ‘섬’이라는 존재에 통일된 존재, 세이렌이 나타나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고, 그저 ‘통치자’나 ‘숭배대상’과 같은 자리에 털썩 앉혀 놓고, 세이렌이 주는 풍요만 받아먹으며, 시마지로 아저씨의 가게는 갈 필요도 없어집니다. 거기에 주민들은 세이렌이 자신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그녀와 제대로 된 대화의 장을 이끌어 내지도 못하고, 어디 변변찮은 무기나 만들어 대항하려고 하지만 실패하며, 한 술 더 떠, 자신들의 위기를 외부인의 도움을 통해 극복하려고, 심지어 그 마저도 100배 수익이라는 ‘거짓말’로 외부인들을 불러들입니다.

반강제로 통치자와 같은 위치에 선 세이렌도 참 재밌습니다. 물론, 코끼리 한 마리가 개미 한 마리 한 마리 신경쓰며 걷지 않는 것처럼, 사고를 내도 눈치를 못 채는 둔감함도 있었고, 사고를 당한 당사자가 세이렌에게 직접적인 사태책임을 묻지 않고, 사적제재를 일으키는 것도 일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세이렌이 폭군이 되어 섬 주민을 잡아먹는 이유도 “인어가 셋에서 둘이 되니 ‘화음이 안 맞는다’”라는 이유입니다. 인어가 가족이라는 묘사는 나오지 않는데, 단지 자기 노래의 코러스가 불만사항이라고 학살을 저지릅니다. 이에 대해 섬 주민들을 또 크게 나무라기도 참 뭐한 게, 현실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무고한 시민을 죽여 놓고 나몰라라 하는 독재자나 다름없는 자들이 뉴스에서 쉽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독재자들을 시민들의 힘으로 끌어 내는 것은 실제 역사에서도 다수가 아닌 소수의 기적과 기적이 겹친 같은 사례들만 있을 뿐입니다. 한정적인 섬의 자원과 그 마저도 세이렌의 힘에서 나오니, 섬 주민들이 세이렌에 대항할 군이나 치안조직을 구성하지 못한 것도 참 이해가 안 갈 수가 없고, 외부인과 초인적인 힘을 가진 시마지로 아저씨라는 특수한 섬주민의 힘을 빌려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연출이 나옵니다. 작품의 대표 OST중 하나인 [섬의 노래]에서 첫 부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YuX5FQXBwYw&list=RDEMX2F1weZNEp5mg8x_yd5b2A&index=4
맛있는 노점들이 한 가득
솜사탕 맥주에 버터감자
‘타’코야끼 ‘스’키야끼 ‘케’밥에
반들반들(‘테’루테루) 소스의 야키소바
(*작은 따옴표 부분을 이어 붙이면 일본어로 『たすけて』즉, SOS 신호가 됩니다)
등, 일본 마츠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그 중, 유독 ‘케밥’이 눈에 뜁니다만…)이 나열 되다가, 모든 일을 끝마치고 떠나는 치이카와 일행들에게 시마지로 아저씨와 섬주민들이 개사된 노래를 부릅니다.
https://youtu.be/8JccrVdpyoQ?list=RDEMX2F1weZNEp5mg8x_yd5b2A
맛있는 노점들이 한 가득
조갯국 카레에 조갯국 카레
조갯국 카레에 조갯국
반들반들 빛나는 조갯국
이라는 박자도 어거지로 우겨 넣어서 부르는 몰개성한 노래를 감동적으로 불러줍니다. '맛있는 노점들이 한 가득'이라면서 정작 메뉴는 오직 '조갯국'과 '카레', 아니면 '조갯국 카레'가 끝입니다. 전에 불렀던 노래의 음식들인 야키소바나 솜사탕 등등이 갑자기 들어가면, '분위기 망치는 무언가'가 될 것 같은 분위기까지 듭니다. 나가노 작가의 인터뷰 내용 등에서 확인 된 바는 없지만, 제정 러시아 말기에 볼셰비키 혁명으로 새로운 독재의 탄생이 나타난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시마지로 아저씨가 어떤 길을 걸을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지만요.

이렇 듯, 이번 [극장판 치이카와-인어섬의 비밀]은 그간 단순하고 귀여움을 통한 눈요기를 제공하는 본편과 다르게, 현대 사회의 거울, 사법 시스템, 그리고 독재와 역사와 영원과 영생 등에 대해서 심도있게 고찰할 시간을 안겨주는 그러한 작품이었습니다. 대학교의 교양 철학수업에서 우수수 나올 법한 주제들이 귀엽 깜찍 뽀작 한 그림체들로 이야기 되는 것은 덤이구요. 그래서 똑같이 철학을 논하던 스파이더맨과 비비는 것을 넘어 치고 올라간 어떤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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