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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번 출구] –카메라와 음향연출로 극한몰입의 반복-
    [영화]/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2025. 11. 4. 00:09

     *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eW_ur9CM7eo

     

     

     종합게임 스트리머들 또는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 번쯤 봤거나 플레이 해봤을 인디게임 [8번 출구]가 영화화 되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 스토리라고는 전혀 없는 이 게임이 실사영화로 제작된다는 PV영상을 봤을 때, 호기심이 제일 먼저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스토리나 서사적 인기가 높은 소설 또는 애니메이션 원작들을 영화만의 색채로 재해석 해서 올리는 것이 보통이고,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을 최대한 유지시키면서 실사영화를 구성하지만, 대놓고 스토리 자체가 없는 게임에서 영화를 만든다, 이것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개념이었죠. 그렇다고 실사영화가 무작정 게임처럼 아무 스토리도 이야기 해주지 않고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 하는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의 방송을 구경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이상현상을 찾고, 실패하거나 성공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애초에 투자자들이 투자지원을 해 주지도 않았을 터이니, 과연 이 무()에서 어떤 유()가 만들어 졌을지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극장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무엇보다 화제였던 게임 차원문 찢고 나온 듯한 '걷는 남자 아저씨' 배우의 열연이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생각 이상으로 고도의 스킬이 들어간 영화임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주 약간의 클라이막스 장면이나 주인공 외의 인물이 존재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지하철과 의문의 루프 공간만이 계속 진행됨을 보면서, 제작비는 진짜 어마어마하게 절약했겠구나, 하고 감탄하고, 그 안에서도 장면의 연출 등을 보면서 거의 [신세기 에반게리온]급의 극한의 자원절약을 연출로 승화시킨 장면들이 여렷 보였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인 헤매는 남자가 루프공간에서 있을 수 없는 전화 통화 후 좌절해서 쓰러진 장면, 쓰나미 이상현상 직후, 태아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소년의 장면 등, 언뜻 보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엘레베이터 씬을 연상시키지만, 일종의 연출장치처럼도 보여 정말 여러가지 스킬과 응용들이 담겨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원작에 없던 오리지널 캐릭터인 이 '소년'의 아역배우도 엄청난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많은 시간을 주인공의 등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꼭 관객들에게 ‘TPS(3인칭 시점)게임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은 하나하나 루프 공간의 이상현상이 있는지 지목하고, 관객도 인물들의 손가락을 따라 진짜 이상현상이 있는지 없는지 찾게 유도 합니다. 원작의 게임도 대놓고 이상현상임을 알려주는 기믹들이 있지만, 꽤 많은 기믹들이 유심히 공간을 관찰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거나, 정상적인 상황인지 헷갈리게 하는 기믹들이 많기 때문이죠. 또한, 영화는 그러한 부분을 미리 주인공과 관객에게 학습시켜, 정상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루프를 원점으로 되돌려, 관객들에게 탄식을 안겨 줍니다. 그러면서도 카메라는 능숙하게 이상현상을 관객이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이면 알아 차릴 수 있도록 화면을 잡아내, ‘저 정도면 주인공이 놓칠 수 있겠는데, 보는 입장에선, 아오…!’하는 감정을 이끌어 내는데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롱 테이크 기법으로 카메라가 따라가며 관객도 동시에 주인공들 처럼 이상현상을 찾게 유도 합니다

     

     여기에 어마어마한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영화의 ‘BGM’이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나오는 주제곡인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말 그대로 이 영화와 게임을 상징하는 곡으로 주구장창 반복되는 리듬을 연주하는 작은 북 위에 관현악기가 차례로 반복되는 선율을 연주하다가 마지막 피날레에서만 선율이 바뀌는 연출을 보여주는 굉장히 정형화 된 음악입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볼레로가 흘러나오는가운데 한 가지 재밌는 연출이 우연찮게 가미되었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것은 바로 존 케이지의 ‘4 33또한 볼레로와 주고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만원전철 안에서 이어폰으로 볼레로를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껴 잠시 이어폰을 뺍니다. 그러자 볼레로는 한 순간에 묵음이 되고, 전철이 달리는 소음과 좌석에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커다란 울음소리, 그리고 그 아기와 엄마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는 한 중년 남성의 소리로 가득 찹니다. 그 장면을 애써 무시하며 주인공이 다시 이어폰을 끼자, 존 케이지의 4 33초는 정지되고, 다시 볼레로가 흐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jnzZh8ovA

     

     

     볼레로는 계속 반복되며, 변화를 극도로 절제하면서 나아가지만, 존 케이지의 4 33초는 그 자체가 변화이며, 이상현상 만으로 똘똘 뭉친 음악 아닌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기침 소리, 핸드폰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 모든 것이 4 33초의 악기이자 선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복 될래야 반복 될 수 없는 음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독은 볼레로를 듣고 있을 때 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 또는 사회의 움직임을 묘사하다가, 볼레로가 아닌 4 33초로 추정되는 장면에서 아기에게 역정을 내는 중년 남성을 포커싱 하면서, 그 행위나 그러한 사람들을 일종의 이상현상으로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2025, 일본의 저출산은 나날이 심해지고, 아기 및 아동의 인권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아기 엄마와 아기를 배려해주지 못할 망정,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전철의 승객 중 그 누구도그 중년 남성을 제지하지 못 합니다. 그러면서 주인공도 애써 이어폰을 다시 끼며 이상현상이 없다고 억지로 최면을 거는 듯이볼레로를 다시 들으며 4 33초를 차단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바로 루프 공간에 갇히게 됩니다. 이상현상을 알아채지 못하고 정상이라고 판단한 죗값이었을까요. 이러한 부분은 작중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나 심리 등에서 유추한 부분입니다.

     

    https://youtu.be/AWVUp12XPpU?si=BQS9_JWnvJGOmtRR

    진짜 이게 실존하는 음악입니다

     

     

     게임과 달라진 부분들도 흥미로운데, 위에서 묘사한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봤던 SNS장면들이 그대로 이상현상으로 등장하는 것들을 통해 이 영화는 게임과는 다른 새로운 설정을 추가한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루프 공간은 공통된 이상현상(예를 들어,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철문의 손잡이가 가운데에 있는 이상현상은 걷는 남자헤메는 남자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나타났었죠)에 더해, 루프에 갇힌자의 내면을 반영하는 이상현상들도 같이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걷는 남자에게는 여고생 오브젝트의 대사로, 헤메는 남자에게는 SNS의 괴기한 쥐떼와 코인락커의 아기 울음소리 등이죠. 그렇기에 게임에서는 가짜 8번출구 이상현상, ‘클리어용 진짜 8번 출구도 전부 위로 향해있고, 걷는 남자가 당했던 가짜 9번출구 이상현상또한 바흐의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Jesus bleibet meine Freude, Jesus, Joy of Man's Desiring)’곡이 흘러나오며, 루프 공간에 영원히 갇히게 되었지만, 헤메는 남자가 기나긴 싸움 끝에 맞이한 진짜 8번 출구는 원작과 다르게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처음에 주인공은 전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에 천식 발작을 일으키며 어떻게든 그러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지하철역 위로, 더 위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루프 공간에 갇히게 되었지만, 루프 공간 내에서 자신의 태어날 아기에 대한 책임을 각오하고 루프 공간을 클리어 하고 나서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전 여친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전철을 타기 위해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갑니다. 어쩌면 자신의 진심과 내면을 진정으로 상대하기 위해 자신의 안쪽으로 나아간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LBtWoaq1J8

    이 곡 또한 볼레로 또는 캐논이랑 비슷하게 선율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을 줍니다. 걷는 남자 또한 잘못 된 희망에 사로잡혀 영원한 루프를 타게된다는 암시가 아니었을까요

     

     

    음악 연출에서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일본 관공서, 지하철 등지에서 실제로 쓰고 있는 시각장애인 유도음(일본에서는 誘導鈴이라고 합니다)을 이상현상 체크, 또는 정상을 이상현상으로 착각해서 루프를 반복시킬 때 마다 일부러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왜곡시킨 유도음을 틀어주며 작중 캐릭터들과 관객들을 섬뜩하게 만듭니다. 이 소리는 시각장애인처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치인데, 매번 틀릴 때마다 왜곡된 소리로 들려주니, 어떤 의미로 제대로 못 본 당신을 조롱하는 식의 효과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헤매는 남자가 진짜 8번출구를 발견했을 때, 러닝타임 처음으로 편안하고 따스한 분위기로 편곡된 유도음이 나오며, 조롱이 아닌 축하와 찬사로 바뀌는 것도 참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연출 같았습니다.

     

    https://youtu.be/5cyCuN2zj8Q?si=N1JmoyfcujHG9HOH

    이렇게 일본에서는 이 소리를 실제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 내에서도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 바로 주인공 헤매는 남자의 천식 연출입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천식 발작을 일으키고, 약으로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루프를 해결하면서, 이 루프를 빨리 탈출해야 할 목적의식을 부여하고, 거기에 더해 일종의 타임어택효과 또한 가미해서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프의 이상현상에 의해 약과 가방을 전부 잃어버린 후에는 언제 천식 발작이 있었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천식을 단순히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비유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너무나도 싱거운 맥거핀의 일종으로 소비된 것은 아쉬웠습니다. 실제 천식 환자에게 있어서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질병이며, 어떤 의미에선 핍진성 훼손으로 인한 몰입감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천식 설정을 통해 좀 더 허를 찌르는 연출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그래도 아주 큰 몰입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긴 했습니다.

     

    천식 치료소 8번 출구(아니다!)

     

     크게 해석하면, 요즘의 일본 사회의 현상을 비판함과 동시에 개인의 결심과 책임이라는 주제들을 매우 지혜롭게 풀어낸 영화였습니다. 공포영화에서 쓰이는 점프 스퀘어 연출이 소량 가미되어 있어 공포연출이 질색인 분들이 머뭇거리실 수 있겠지만, 그러한 요소는 정말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멋진 연출과 스토리의 조화, 그리고 무의식과 작품을 관통하는 음향 연출 등이 아우러져 진짜 잘 만든 영화라는 감탄이 나오는 [8번 출구]이기에 추천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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