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에서는 한국어가 전세계적으로 K컬처의 힘에 동반되어 알려지고,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대하는 친숙도, 보편적인 이해 등등이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전세계의 메이저 언어라고 불리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한국어는 정말 소수의 학자나 관심있는 사람만 알던 언어에서 이정도로 가치가 뛰어오른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어는 하마터면 세상에서 없어질 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였죠. 당시의 일본 제국은 식민 지배중인 여러 국가뿐만 아니라, 본토의 지방 사투리조차도 전부 도쿄에서 쓰는 공통어로 통일하는 작업을 시행했습니다. 학교에선 이름하여, 방언찰(또는, 방언패. 方言札)이라고 해서 조선말이나 오키나와어, 동북지방 사투리 등등 공통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 패를 건네주고, 다른 학생이 쓰면 또 이 패를 넘겨줍니다. 그러다가 그 날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종례를 할 때, 최후로 이 패를 가진 학생은 매타작을 비롯해서 온갖 체벌 또는 교내 벌칙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 교과서에서도 실린 적이 있었죠.

이렇듯, 약 35년의 세월동안 한국어는 일본어의 큰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광복후에도 각종 방송 시스템이나 여러 미디어들이 일본의 것을 답습하게 되면서 한국말도 일본말도 아닌 ‘무언가’를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술 더 떠서 당시엔 아날로그AM주파수를 사용하던 시대. 지금의 디지털, FM 송신이 아니었던 시대라, 아날로그 전기신호는 아직 발달하지 못했던 전기 수송기술에 더불어 각 지역으로 이동을 하면 할수록 그 신호의 세기와 품질이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의 TV나 라디오에 도달할 즈음이면 음역대나 소리의 일부가 소실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지금 우리 세대가 접하는 디지털 방식은 소리를 01001010011… 같은 데이터 조각으로 아주아주 잘게 나눈 뒤 송신을 합니다. 그래서 빠르고 손실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로 수신매체에 도달한 다음, 잘게 쪼개진 데이터들을 복원하고 해독해서 깨끗한 음질로 방송이 되는 원리입니다. 여튼, 이와 다르게 아날로그 방식은 소실되는 음역대와 소리가 너무 심했고, 그로 인해, 조곤조곤 말하거나 일정한 억양으로 주구장창 이야기 하면 도저히 알아듣기 힘든 상태로, 대략 ‘웅얼웅얼’거리는 듯한 소리로 송출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아나운서들과 배우, 성우, 변사 등등은 방송 연기용으로 실제 말투에선 잘 쓰이지 않는 특유의 쌔고, 하이톤 위주이거나 억양의 굴곡이 심한 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각 지역의 TV, 라디오까지 도달했을 때 음역대가 소실되어도 그 특유의 억양 때문에 한국어의 발음 자체는 유지가 되었고, 또 억양 등을 통해 시청자, 청취자들은 맥락, 단어 등을 유추하기 쉬워 정보전달이 용이했습니다. 이것은 실제 연극이나 뮤지컬과도 일맥상통하는 원리인데, 특유의 연극, 뮤지컬 톤 등은 마이크가 없던 시절, 맨 뒷자리나 2층, 3층의 관객들까지 들을 수 있게 연구된 톤입니다. 사람이 기계장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대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 자체도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송 시절과 비슷한 원리였던 것입니다.
https://youtu.be/mOt2PW_F6Nk?t=1622
문제는 이러한 관습이 고착화되면서 점점 자연스러운 한국어나 일상에서 쓰는 한국어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디지털 기술이 보급화 되고, 아날로그 시절의 억양대로 송출을 하니, 너무나도 큰 소리나 어색함이 크게 다가와, 다시 방송용 연기나 나레이션 등을 대대적으로 연구해야 했죠. 이제는 속닥속닥 속삭이는 소리도 소실이 거의 없이 전달이 되는 시대가 되어, 연기의 폭이나 경우의 수가 더더욱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유튜브 더빙 콘텐츠 들을 보면 일부러 그 시절의 연기를 따라하는 장면이나, 현실 한국어 말투 그대로 더빙을 하는 등, 바리에이션이 매우 다양한 이유로도 이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아직 디지털의 보급이 초창기였던 시절은 과도기였기 때문에 과거에서의 답습이 주류였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지금 나오는 게임들의 한국 더빙과, 90~00년대 한국어 더빙된 게임들을 들어 보시면 그 차이는 확연히 느껴질 겁니다.
https://youtu.be/jtIPB5U3TXY?t=616
이러한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서 한국의 나레이션으로 정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종성 성우’와 이전에 대담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종성 선생님은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라는 타성에 젖어, 한국어 고유의 말, 억양, 발음, 연기 등을 전문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 가수, 배우, 성우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선배나 스승에게 배우며, 그들의 지식과 노하우를 답습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선대의 훌륭함을 변함없이 후대에까지 전한다는 좋은 시선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국이 다시 세워지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등, 시대가 격변해 같이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할 것조차 관습에 의해 변하지 못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선생님은 보셨던 겁니다. 물론, 선생님은 “요즘의 성우들은 단순히 답습하는 것을 넘어 대중에게 익숙하며, 올바른 한국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모습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고도 하셨으며, 실제로 요즘 들어 한국 더빙 콘텐츠들의 스펙트럼도 매우 다양해진 것을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https://youtu.be/UkKarqFL1dE?t=3
하지만 그럼에도 그 오랫동안 쌓여 딱딱한 앙금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직도 ‘그 때 그 방식이 정답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는 이미 일체화 되어 바꾸고 싶어도 좀처럼 바꿔지지가 않는 방송 PD나 엔터테이너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그러한 상태의 한국어 더빙을 들었을 때, 일반 시청자들은 ‘역시 한국어 더빙은 이상하고 고리타분 해’, ‘옛날 연기에서 바뀌지를 않아’라고 생각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러 PD들과 성우들, 배우들은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며, 시대에 맞는 한국어 연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조만간 적어도 ‘올드한 연기’라는 시청자 피드백은 대부분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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