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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오브 인터레스트] - 적응이란
    [영화]/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2024. 6. 25. 23:32

    *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Ny59FG4Jgg&ab_channel=challanfilm

     

     

     흔히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 뜻은 다른 동물들이나 생명체들과 다르게, 인간은 환경이 변해도 그것에 맞추어 적응하면서 생존력을 극한으로 높이는 진화론적인 방법을 택한 것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문구이죠. 그래서 야생사자는 북극에 없고, 야생팽귄은 열대지방에 없지만, 사람은 지구 그 어느 곳에도 터전을 마련해서 살고 있죠. 물론, 맨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각종 도구를 이용해서 인간이 그 지역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함과 동시에 말입니다.

     

     

     이번에 칸 영화제에서 부터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내로라 하는 영화제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받은 영화이자, 한국의 영화평론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절대로 쉽게 점수를 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박평식’&’이동진평론가에게서 별점 만점, 또는 평론가에게 있어서 만점이나 다름없는 점수를 획득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는 말을 정말로 공포스럽게 표현했습니다.

     

     

     이 영화는, 아니, 영화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들, 실제 배경을 구현해 내며, 다큐멘터리 재연영상이나 다름없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세부적인 대사나 행동들은 제작진과 감독의 상상에 기반한 점도 있겠지만, 좀 더 쉽게 풀이해서 MBC방송국의 일요일 오전을 책임지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와 비슷한 방식의 재연영상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큰 줄기는 그러한 방향에 감독 특유의 예술성을 가미해서, 갑자기 시꺼먼 화면만 보여주거나, 카메라 안에 빨랫감으로 화면을 나누고, 나뉘어진 컷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동선과 그것이 은유하는 것, 영화보는 내내 손에 꼽을 정도로 배경음악이 안 나오지만, 나올 때 마다 기괴스러운 OST, 그리고 존 케이지의 아방가르드 음악인 [4’33”]기법처럼 보이는 BGM , 다큐멘터리를 영화처럼 꾸몄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EFKFiXSx4&ab_channel=JoelHochberg

    존 케이지의 [4'33"]

     

     

    일단 이 영화는 당연하지만 상업영화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엄청난 점수를 줘서 애인이나 친구랑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다가 화들짝! 하는 영화일 겁니다. 이 경험은 [판의 미로] [미스트] 때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줄 겁니다. 너무나도 영화가 잔잔한데,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처럼 갑자기 툭 던지는 시퀀스, 그리고 당시의 역사를 미리 공부하고 가면 더더욱 소름 돋는 대사배치와 단어선정, 결정적으로 다큐멘터리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접하는 시설물과 오브젝트와 카메라 구도 등이 던지는 그 신랄한 은유.’ 이런 것을 목표로 본다면,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입니다. 물론, 영화 하나를 보는데 피곤하게 이런 거 하나하나 다 따져보는 것은 취향이 아닌 관람객들도 있을 것이고, 저 또한 그런 취향을 존중하므로, 단순히 보는 것을 즐기는 분들은 후에 평론가들이나 전문 리뷰 유튜버들의 해설을 같이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 제 포스팅을 포함해서요.

     

    https://www.youtube.com/watch?v=qG5Z9LzbQpQ&ab_channel=an11212003

     

     

    영화는 시종일관 담장 밖에서 총소리와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담장 내부의 천국과도 같은 주인공 아우슈비츠의 소장 루돌프의 관저와 그의 가족들의 단란한 대화, 그리고 아직 아기인 막내의 울음소리가 사운드를 가득 메웁니다. 영화가 초반에는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든 소장의 가족들과 손님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합니다. 루돌프의 아들들은 전쟁놀이나 병정 장난감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이며, 딸들은 밤마다 아빠가 읽어주는 [헨젤과 그레텔]동화를 들으며 잠에 듭니다. 루돌프 또한 동물을 무척 사랑하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헌신적이고, 정말 화 한 번 내지 않는 너무나도 자상하고 다정한 아빠입니다. 병사들에게 직접 라일락을 함부로 꺾지 말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루돌프는 겨우 한 뼘 두께의 집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수십만명의 학살을 진행하는 생사여탈권의 명령권자가 됩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감금되는 사람들의 생명은 업무를 넘어선 범위로 바라봅니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처럼 영화의 분위기, 또는 스토리텔링 곡선이 급변하는 지점이 있는데, [기생충]의 경우에는 박 사장 일가에서 일하던 가정부 국문광이 주인공 김기택가족의 설계에 의해서 쫒겨난 다음, 폭풍우가 몰아치는 깊은 밤에 인터폰을 눌렀을 때처럼, 그리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는 루돌프가 전근을 명 받는전화를 받았을 때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루돌프가 전근을 명 받기 직전까지는 그저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과, 평범하게 부하들과 맡은 일을 해내는 루돌프의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그랬던 그가 전근 사실을 뒤늦게 아내에게 말을 했을 때, 이 아내의 태도가 가관임과 동시에, 이 작품의 분위기 자체를 리드해 갑니다.

     

     

     

     루돌프의 아내는 그저 평지에 불과했던 아우슈비츠 옆 관저의 땅을 에덴동산(실제로 아우슈비츠는 독일의 동쪽인 폴란드에 위치해 있으며,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쫒겨나, 동쪽 방향으로는 갈 수 없게 된 것, 그리고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후, 에덴의 동쪽 방향으로 쫒겨난 것 등등의 비유로도 볼 수 있습니다)처럼 꾸며놨고, 각종 농작물에 장미를 비롯한 화려한 꽃들, 달콤한 꿀을 얻을 수 있는 벌통, 깨끗한 물이 나오는 수영장과 실내 정원도 전부 그녀가 꾸며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남편이 무려 승진을 해서 전근을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절대 못 간다고, 갈려면 루돌프 혼자 가라고 대놓고 기러기 아빠가 되라고까지 합니다. 이 천국의 화원같이 생긴 정원의 담벼락을 슬쩍 넘으면 어떤 대학살이 벌어지는지 절대 모를 리는 없을 겁니다. 그렇게 결국 홀로 기러기 아빠가 되어 전근지에서 몇 달 동안 복무하던 루돌프는 헝가리에서 붙잡은 유대인들 수십만명을 아우슈비츠로 이송하는 작전에서 군의 높으신 분들이 다시 루돌프가 아우슈비츠의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을 했을 때, 루돌프는 아내에게 자랑을 하며, 파티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가스로 이 사람들을 다 죽일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파티장은 천장이 높아서 안 되겠어라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당장에 수십만명을 죽이는 것에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가족들이 만든 지옥속의 천국과 가족들의 품, 사랑하는 강아지와 말에게 돌아갈 생각에 흡족해 합니다.

     

     

    딱 이 영화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 한 명 나옵니다. 바로, 루돌프의 장모인 리나인데요, 루돌프가 여는 파티에 참석할 겸, 딸 부부가 잘 살고 있나 방문하던 장면입니다. 아우슈비츠에선 시신을 쉴 새 없이 태우는 굴뚝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무한대로 흘러나오고, 비명과 총소리와 고함과 군견이 짖는 소리는 여름의 매미소리 보다도 끊이지 않게 들립니다. 리나가 딸에게 벽 밖의 것을 물으니, 딸은 담장이 보이지 않게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둥, ‘사람들이 저를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고 불러요!’라는 농담을 하는 둥,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 하는 표정을 은연중에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녀만이 등장 할 때마다 기침을 하고, 결국엔 말 없이 편지하나만 달랑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데, 그 편지의 내용은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절대로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학대당하고 학살 당하는지 단 한 장면도, 1 프레임 조차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대사와 소리로만 은유합니다. , 장면으로도 은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루돌프가 가스실이야기를 한 다음 장면에, 두 아들이 겨울의 정원에서 뛰어놀며 장난을 칩니다. 근데 형이 어린 동생을 집어 들고, 정원내 온실에 동생을 가두고 문 밖에서 낄낄거립니다. 어린 동생을 형에게 화를 내며 이 배신자!” 하면서 꺼내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데 이 온실은 무려 영화 중반부에서 루돌프 부부가 정원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담배를 피우던 장소였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이 두 형제의 장면이 무엇을 은유했는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렇듯, 영화는 시종일관 수많은 은유와 적응의 무서움, 그리고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시되는 것의 공포를 너무나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카메라는 트래킹(*배우를 따라가면서 찍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그저 설치만 해두고 배우들이 알아서 연기하게 두었고, 꽃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면서 뒤에는 어른이 고통과 공포에 울부짖는 소리를 꼭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표현시켜, 부조화의 극을 달립니다. 오타쿠적인 관점을 접목시켜 보자면,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나기사 카오루 헤드 다이빙 신에다가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4악장(*환희의 송가로 잘 알려져 있는 곡이죠)을 틀어주거나, 구극장판[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기괴한 스케치북 그림이 쉴 새 없이 펼쳐지며 흘러나오는 잔잔한 멜로디에 그렇지 않은 가사를 가진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신극장판[에반게리온 : ]에서 아스카 냠냠 신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동요 같은 구성의 반대로, 화면은 평화로우나 BGM이 그렇지 않은 점이 본 영화가 시종일관 보여주는 구성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bN-dubqANU&ab_channel=Demoshi

     

     

    어느 새,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도 뒷 배경에 어느 새 적응해버리게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감독과 제작진은 적응하지 말라는 듯이 도중도중 화면을 휙휙 바꿔 버리거나, 갑자기 현대의 아우슈비츠 관리직원들이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 영화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엔딩크레딧의 정말 머리가 아파올 정도의 비명곡은 우리는 절대로 이 루돌프 가족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버리고, 계속 기억하며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면 안 되는 것을 망각하고, ‘적응해 버리는 것에 대해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 아닌가 추측이 들었습니다.

     

    무겁게 봤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긴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처럼 알고가면 갈 수록 보이고 들리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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