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크르 – 게임은 얼마나 더 현실의 고증을 지켜야 할까?
플레이어들은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하면서 그 어떤 게임보다 감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른 게임들로부터 느낄 수 없었던 모험의 자유도와 ‘고기를 불에 구우면 구운 고기가 되고, 눈밭에 두면 얼린 고기가 되는’, 현실의 법칙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핍진성 있게 적용되는 것에 감탄을 했었습니다. 젤다 뿐인가요? [레드 데드 리뎀션2]에서는 타고 다니는 말의 생물학적 고증을 구석구석까지 살렸고, 그 외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디테일한 부분도 재현해 냈으며, [GTA]시리즈는 미국의 지역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하죠.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나 [배틀필드]시리즈 같은 경우도 실제 특수부대 출신 군관련 전문가들이 직접 플레이 하면서, 사소한 차이점은 지적을 하더라도, 큰 부분에서 고증을 매우 잘 살렸다고 평하는 영상들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일부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게임의 고증을 잘 살리는 면과 현실성을 더욱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부분에서 환호를 하고, 고증이 틀리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기분이 식는 평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한 평을 내는 사람들은 절대로 ‘틀린’ 의견을 낸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 등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크게 한 것도 없는데 여신과도 같은 미모를 가진 복수(複数)의 히로인들이 달라 붙는 걸 보면 이게 판타지인지, ‘시뮬레이션’인지 감도 오지 않죠.
그래서 한 게임은 정말 작정하고 현실 고증을 최대한, 정말 들이 붓는 수준으로 게임에 적용시킨 작품이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아시는 분은 바로 타이틀을 떠올릴 [쉔무]라는 게임이죠. 무려, 20세기 말, 1999년 12월에 발매된 이 게임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최정점으로 3D와 AI프로그래밍을 깎아서 주변 캐릭터 하나하나가 정말 살아있는 듯한 패턴을 보여주었고, 보통 다른 게임에서는 무시하고 넘어갈 오브젝트들, 예를 들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는 모션이나, 게임의 배경이 되는 1987년 일본 요코스카의 날씨 데이터를 그대로 넣는 등, 리얼리티를 넘어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으로 스토리상 지게차 알바를 해야하는 주인공의 작업현장을 스킵 조차도 못 하고, 대뜸 지게차 운전수 자격증 시험을 방불케 하는 고된 노동과 함께 플레이 할 수밖에 없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이후 [용과 같이]시리즈, [GTA]시리즈 등에 큰 영감을 주어, 수많은 대작 오픈월드 게임들의 훌륭한 초석이 되었지만, [쉔무]는 너무 큰 제작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적은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왜 우리들은 게임의 현실 고증에 열광하면서, 정작 너무 현실성을 추구하면 도리어 불편을 느끼거나, 게임으로써의 재미를 잃는 경우도 발생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이번 포스팅 주제인 ‘시뮬라크르(Simulacre)’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뮬라크르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부터 니체의 ‘우상의 황혼’등 여러가지 철학적 논제를 거친 다음, 프랑스의 철학자 장 브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으로 정리를 하기에 이릅니다.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철자를 보시면 아시다싶이 영어 시뮬레이션의 프랑스식 발음이고, ‘시뮬라크르 하다, 시뮬라크르 하기’ 등의 뜻으로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시뮬라크르는 아주 간단히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자면, ‘진짜보다 더 진짜스러운 가짜가 현대에 와서는 독립된 오리지널이 되거나 진짜를 대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포스팅 초반에 말씀드린 [젤다의 전설]의 주인공 ‘링크’는 분명 우리가 익히 상상할 수 있는 키워드들, #소년 #전사 #요정 #엘프 #금발 #벽안 등의 이미지를 캐릭터화하고, 그걸 그래픽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렇게 ‘링크’라는 개념은 탄생했습니다만, ‘링크’는 현실세계에 실존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 세계’와 ‘영상 세계’에서만 존재합니다. ‘링크’를 일반 사람이 코스프레 할 수는 있어도, 개념속의 ‘링크’가 실체화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링크’라는 캐릭터의 독립된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고, 그 ‘링크’를 대체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정말 역사나 현실 속에 있을 것 같지만, 존재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것을 모방해 태어났지만, 그 자체가 이제 독립된 하나의 ‘진짜’로서 자리잡게 된 겁니다. 링크를 코스프레 한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기 보다는 ‘링크’라는 존재를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 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게임은 현실과 닮았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게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에, AI를 초특급으로 발달시킨 뒤, [소드 아트 온라인]처럼 풀 다이브형 VR로 즐기는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고 칩시다. 그리고 이 게임의 혁신적인 기술로, 이제 더 이상 미연시 게임에 객관식이 사라지고, 내가 말 하는 것, 작은 손짓이나 심리적 사인 하나하나에 게임속 미소녀 캐릭터가 반응하고, 그에 따른 ‘현실 같은’ 피드백 대화를 준다고 합시다. 근데 이런! 너무 현실적이라서 게임 속 미소녀 히로인이 주인공인 ‘나’는 못생겼다고 내팽개치고, 잘생긴 서브 남주와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화가 나서 꽤 잘생긴 친구에게 시켰더니, 뭐 말도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게임 캐릭터와 연애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럼 이게 게임일까요, 현실일까요?
즉, 게임은 현실을 모방한 ‘비현실’이기 떄문에 ‘게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게임이 어떻게든 현실과의 선을 넘어 현실이 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더욱 게임으로서의 존재가 퇴색되어 가는 겁니다. 심지어 게임은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일방통행형으로 작품의 정보(스토리나 배우의 외견, 성우의 연기 등)를 받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양방통행성을 띈 콘텐츠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굳이 그래픽을 발전시키거나 총기 고증 등을 살릴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하지만, 아직 기술이 뒷받침 되기 이전 시대의 도트 그래픽 게임 시절에 그 누구도 그런 그래픽이나 총기 고증 등을 따져가면서 게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발전하는 그래픽과 핍진성에 도트 그래픽과는 다른 또 다른 몰입감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일종의 실사영화를 보면서 감정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겠죠. 하지만, 게임은 이제 얼마나 현실적이여야 하는가, 얼마나 게임성을 살리는가에 대해 그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참 재밌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게임의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생긴 현실과 시뮬라크르 사이의 고민이라고 생각됩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보드게임들은 그저 시뮬라크르성 강한 게임이었고, 오로지 재미있는 게임의 룰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퍼즐 게임들도 마찬가지죠. 예외라면, 전장에서 지도 위에 말판을 움직이면 실제로 병사들이 움직이는 작전상황이 가장 현실과 시뮬라크르를 같이 이용한 고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AI의 발달, 그래픽의 발달, 더더욱 고증을 살리는 대작들의 탄생 등으로 시뮬라크르와 현실간의 경계선이 점점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현실성’만’ 찾는 것은 재밌는 게임을 위한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묘한 현실과 모방의 결과로 독립적인 주체인 ‘시뮬라크르’를 만들어내어, ‘게임’ 자체로 인식되는 그 미묘한 줄타기 싸움이야 말로 기술력이 발달한 현 시대에 걸맞는 게임 구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에서 비현실적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재미를 느끼고 게임으로 인지하는 원리. 현실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게임은 현실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