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장송의 프리렌] -갭모에의 교과서-

G.Mario 2024. 4. 28. 02:26

*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1O3DbHjDio&ab_channel=Laf

 

2023 4분기, 그리고 2024 1분기에 [던전밥]과 같이 판타지 애니메이션 투톱을 달린 작품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Meme)’을 생산하고, [최애의 아이]의 오프닝곡을 부른 것으로 유명한 요아소비 1쿨 오프닝을, ‘굿바이 선언으로 대유행을 이끌었던 요루시카 2쿨 오프닝을 부른 것으로도 유명한 [장송의 프리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쿨 오프닝이 좋더라구요. 위벨이 나와서만은 아닙니다.

 

[장송의 프리렌]은 원작 만화도 물론 인기가 많았지만, [진격의 거인]케이스처럼 애니메이션으로의 트랜스 미디어가 오히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크게 히트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히, 원작자 특유의 조용한 전투씬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던 부분이 애니메이션에서는 가히 극장판 퀄리티를 방불케 하는 호쾌한 액션씬으로 재탄생 해, 원작팬들의 일부 불호 마저도 깨끗이 해결해 주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Uhnh9g-0fEQ?feature=share

 

정지매체인 라이트노벨이나 만화 등이 재생매체인 애니메이션으로 트랜스미디어 되었을 때의 가장 큰 메리트로는 소리의 추가라고 꼽고 싶습니다. 효과음부터 시작해서 배경음악, 그리고 성우들의 열연 등은 정지매체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연출이니까요. 그 중에서 이미 1000년을 넘게 살아 은근한 권태감을 느끼는 주인공 프리렌의 연기가 특히나 인상 깊습니다. 심지어, 담당 성우의 전작이 바로 [스파이 패밀리]아냐 포저역할을 했던 타네자키 아츠미(種崎敦美)’성우였다는 것은 엔딩 크레딧을 몇 번을 다시 볼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죠.

 

성우가 같아서 이런 짤도 생산되는데, 프리렌 행적상 위화감이 없는 표정이라 참...ㅋㅋ

 

그러나 원작이 재미없으면 애니메이션으로의 트랜스 미디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 이 작품의 매력포인트가(전투장면을 제외하고) 원작에서부터 출중했기에 애니메이션에 와서도 큰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기존의 판타지 장르의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한 번 마왕을 물리치고, 동료들과 함께 여행했던 길을 다음 세대의 제자들과 다시 한 번 경험해 본다는 신선한 스토리텔링, 이미 겪을 것을 다 겪고, 강해질 만큼 강해진 현자 같은 주인공이 보는 색다른 시선,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영원에 가깝게 사는 엘프이기에 남겨지는 자들에 대한 미련 등, 기존의 판타지 장르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함을 충실한 개연성과 함께 풀어내는 능숙함이 작품의 주된 매력 포인트로 뽑히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순애의 마왕(?) 힘멜의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죠

 

저는 여기서 재미난 점을 발견했는데, [장송의 프리렌]에 등장하는 정말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개연성 있는 갭모에(ギャップ)’를 탑재하고, 또 그 갭모에가 다른 갭모에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과 유기적으로 화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고, 이 또한 작품의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이 갭모에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소소하게 밈으로도 쓰이고 있을 정도니, 여러 시청자들도 이 부분을 인상깊게 봤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략 이 경우에는...역갭모에...라고 해야할까요?

 

먼저, 갭모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캐릭터의 모에(일본어로 불타오르다라는 뜻으로 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불타오를 것 같은 요소를 일컬을 때 자주 씁니다)스러움부분에 크나큰 갭(Gap)이 있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데, ‘갭이 오히려 더욱 이 캐릭터를 모에스럽게 하는장치일 때 쓰이는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주 강력하고, 실제로 무도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챔피언 캐릭터가 있다고 합시다. 항상 무도의 극을 추구하기 위해 늘 정진하고, 스스로를 엄하게 단련하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헬로 키티]같은 유아용 캐릭터 오타쿠라는 굉장한 이 느껴지는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이러니. 이것이 캐릭터에 대해 스토익하며 강하고 멋진 캐릭터라는 기존의 매력에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유아용 캐릭터에 죽고 못사는 특이한 인간미를 가진 캐릭터라는 더블 포인트가 추가되어, 일종의 매력 2배 이벤트 같은 어필 포인트 장치로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단 가상의 캐릭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연예인이나 아이돌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죠. 항상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BTS의 멤버 중 한 명이 알고 보니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골수 플레이어인 점이나, 배우 심형탁 씨의 경우 매력적인 외모와 더불어 훌륭한 연기파 배우이지만 누구라도 알 정도의 [도라에몽]덕후라는 점 등이 있죠.

 

이 분은 그냥 갭

 

지난 번 포스팅에서 설명한 페르소나부분과도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만, 사회 안에서 쓰는 페르소나의 안쪽에는 이러한 갭모에 요소가 자리잡고 있고, 그걸 가면으로 감추고 있다가, 사생활에서는 가감 없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화려하고 멋진 가면 뒤에 귀여운 얼굴을 발견한 듯한 심리가 작동하는 원리 같습니다.

 

마...마침 적합한 예시의 캐릭터가 있어!!!

 

하지만 이 갭모에 요소가 일본 애니메이션 상에서 일명 양산형 하렘물 등지에서 너무 남용이 되기도 합니다. 작품 자체의 스토리텔링이나 적은 제작비로 퀄리티는 개판인 일부 작품에서 어떻게든 상업적인 요소로 캐릭터 OSMU장사나 캐릭터 담당 성우 연계로 모래에서 물을 쥐어 짜듯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려야 하기에 너도나도 갭모에 요소를 남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쿨하고 마초적인 여선배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과 단 둘이라면 언제든지 달겨든다거나, 말 수가 적고, 감정이 없어 보이는 지적인 여후배 캐릭터가 유령 또는 벌레 등에 극한의 공포심을 느껴 남자 주인공에게 와락 달라붙는 다는 설정은 거의 클리셰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분명 인기를 불러오는 갭모에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애니메이션 리뷰 유튜버들에게 망작’, ‘쓰레기등등의 멸칭을 받는 것도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예외의 예시...

 

그런 작품들 가운데 [장송의 프리렌]은 단순히 이유 없는 갭모에를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니라, 왠지 이런 갭모에가 어색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참 재밌습니다. 먼저, 세계관 최강자 라인에 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하고, 항상 마력과 감정을 통제하는 프리렌이 어차피 오래 살 거니까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려는 듯, 잠버릇과 늦잠력은 아주 고약해서 제자 페른이 거의 어머니나 다름없이 프리렌을 돌봐야 합니다. 페른은 어떤가요? 그 스승의 그 제자 답게 항상 냉철하고, 흥분하지 않는 페른은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동료 슈타르크에게 복어 마냥 볼을 부풀리며 슈타르크의 등판을 드럼 마냥 두들깁니다. 게으른 딸 내미를 둔 엄마에서 철없고 애 같은 남편을 둔 아내로, 그리고 한 명의 연애감정을 지닌 평범한 소녀로 보일 정도지요. 그럼 그 슈타르크는 어떠냐? 도끼로 절벽을 두동강내서 협곡을 만들 정도의 괴력에 자기보다 수십배나 더 큰 드래곤을 거의 혼자서 토벌할 정도의 실력자이지만, 어려서부터 드워프 스승인 아이젠과 단 둘이서만 살았기 때문에 정신은 순수한 아이인 상태로 몸만 자라, 구름을 보고 똥 모양이다! 이따가 페른에게 자랑해야지같은 생각을 하는 갭모에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삼인방이 여행길 중에서 이 갭모에들이 얽히며 무한에 가까운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심지어 이것이 이 세 캐릭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전 프리렌이 첫 모험을 떠났던 용사 힘멜 파티도 각자 재미난 갭모에 요소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스토리의 한 축을 구사하는 것도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진짜 이 캐미는 이루 말 할 수 없죠 ㅋㅋㅋ

 

[장송의 프리렌]은 정말 은은한 매력을 가진 애니메이션입니다. 느긋한 호흡으로, 천천히, 그리고 뽀송뽀송하게 말린 빨랫감에서 풍겨오는 햇볕과 섬유 유연제 향기를 맡는 듯한 애니입니다. 그렇듯,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이유 있는 갭모에들도 단 한 명의 매력으로 휘발되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끼치면서 스토리의 일부가 되기까지 하는 점은 정말 갭모에의 교과서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이런, 같은 동료인 아우라를 빼먹었군요!(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