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작품속 철학, 이렇게 이야기 해 보았다

[공주님, 고문의 시간입니다] – 마족의 고문은 페르소나를 부순다!

G.Mario 2024. 4. 7. 00:30

https://www.youtube.com/watch?v=DErLryZLQb8&ab_channel=SHOPRO 

 

 고대 그리스의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마이크 대신 확성기처럼 쓰던 특수한 가면의 이름이 바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합니다. 요즘은 세가와 아틀라스의 일본을 대표하는 RPG게임 중 하나인 [페르소나]시리즈로도 이 단어가 잘 알려져 있죠. 그리고 우리들의 실생활에서는 철학적인 용어로도 이 페르소나가 쓰이지만, 주로 심리학 용어로 페르소나가 잘 쓰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용어를 소재로 만든 [페르소나] 시리즈

 

 그 유명한 심리학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제자이자 연구적 동료이기도 한 카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주장한 단어가 바로 이 페르소나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 드리자면, 페르소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본성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심리장치라고 축약할 수 있으며, 예시를 들면, 본인은 공포영화를 싫어하지만, 애인이 꼭 이 공포영화는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 척 연기를 하거나,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현생을 살고 있음에도 주변 사람들을 만나거나 지인을 만날 때, 항상 당당하고 진취적인 페르소나를 장착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예시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유튜버들이나 버튜버들이 방송에서 이름하여 컨셉을 잡고 방송에 임하지만, 방송을 종료하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켤 때면, 모든 페르소나를 벗고 본인으로 돌아가게 되는 거죠.

 

알고보니 이(코가 수상한) 스트리머도 일부러 게임실력이 형편없는 나! 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있던 게 아닐까요...아이고난!!

 

 페르소나는 절대 위선이 아니며,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문제는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 페르소나가 너무 두껍거나, 너무나도 사회에 치여 자아를 잃어버리는 경우, 또는 어렸을 적부터 교육이나 환경 등으로 인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페르소나를 벗을 수 없는 케이스 들도 마음의 병을 앓게 하거나, 목표의식의 왜곡이 따라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결국 페르소나에 잡아먹힌 캐릭터들을 묘사한 작품이기도 한 [SKY캐슬]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굉장히 재미있게 본 만화원작 애니메이션 [공주님, 고문의 시간입니다(이하, ‘공주고문’)]가 딱 이 페르소나에 대한 소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먼저, 이 작품을 모르시는 분들은 제목만 보고, ‘아니, 이거 무서운 거 아님?’, ‘제목이 너무 자극적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이거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개그물이자 힐링물 입니다...고문이라는 것이 인간 왕국의 비밀을 한 가지 불기 전까지 눈 앞의 허니버터빵을 먹을 수 없음’, ‘비밀 하나 불면 계곡이나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이제는 그냥 마족이 스스로 비밀 불고 공주랑 게임하며 놀기...’ 같은 것을 고문이라는 단어에 막 가져다 붙인 코믹성만 가득한 작품입니다.

 

제목과 포스터의 불일치에서 이미 작품의 개그 오오라가 보입니다

 

 작중 주인공인 공주(*여담으로, 본명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누구라도 그냥 공주’, ‘공주쨩’, ‘공주님하고만 부르기 때문입니다)는 마왕군과의 전쟁 중,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에고(Ego)소드 엑스와 함께 마왕군에게 포로로 잡혀, 감옥(이지만 겉만 그러한)에서 고문을 받아, 인간왕국군의 비밀을 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회차가 거듭되면 거듭될 수록, 식고문(?)을 넘어 전자오락 고문, 강아지랑 놀기 고문, 온천 즐기기 고문, 놀이공원 같이 가기 고문, 해수욕장 물총놀이 고문, 마왕 아저씨 딸램의 뽁뽁이 놀이 고문, 이젠 고문도 뭐도 없고, 그냥 마왕 아저씨 딸램 운동회 참가...등 포로와 고문을 빙자한 힐링라이프를 즐긴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골조입니다. 항상 맛있는 고문음식과 즐거운 고문놀이 등에 해벌레 하고 있는 공주를 성검 엑스가 잔소리를 해대지만, 그 엑스마저도 제련고문(!)을 통해 굴복하고, 어느 새 즐기고 있는 모습으로 나오게 됩니다. 일본 만담(漫才)개그에서 바보역할을 하는 보케와 그 바보를 혼내면서 웃음을 극대화 시키는 츳코미역할이 초반에는 유지되었지만, 이윽고 그 경계 마저도 사라지고, 츳코미도 보케가 되어가는 개그를 보게 됩니다. 참고로, 이전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던, 개연성과 핍진성을 이 작품은 정말 대놓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제목에는 도발적인 키워드를 넣었지만, 내용면에서는 더욱 도발적으로 중세시절 갑옷을 입던 공주가 맨투맨 티셔츠와 캡모자를 쓰고 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며, 개그 장르의 끝을 달리겠다고 선포하는 연출도 백미입니다.

 

귀여움을 견뎌야 하는 고문이라니...큭! 너무 강력하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늘 고문이 시작될 때 마다, 공주가 한 번씩 외쳐주는 대사가 있습니다. 대략, “나는 국왕군 제3기사단장 기사단장! ~한 시련이 있어도 ~~하게 전부 극복한 적이 있다!”하면서 고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지만, 늘 굴복하고 평범하게 행복해하는 여고생 또는 여대생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스쳐 지나가듯, 공주가 얼마나 강해지기 위해, 공주라는 지위에 걸맞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지 묘사를 해 줍니다. 부하들과 국민 앞에서 늘 당당하고, 언제든 희생하며, 고결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입고 다니는 중장갑 플레이트 아머 같은 두꺼운 페르소나를 쓰고 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중 피지컬도 원탑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본성은 그저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너무나도 다를 것이 없었고, 항상 홍차와 고급스런 디저트 뿐만 아니라, 국민과 부하들 앞에선 겸양을 위해 삼가야 했던 길거리 군것질 음식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사실 중, 공주는 인간세계에서는 진정한 친구가 없었고, 그저 본인이 지켜야 할 대상, 또는 상대의 속을 알 수 없어 경계해야 할 대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족들에게는 고문을 빙자하여 즐겁게 놀고, 서로의 본심을 주고받으며, 숨김 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 계속 늘어납니다. 그 어떤 강한 검격이나 마법에도 금조차 가지 않던 공주의 페르소나는 진정한 행복과 해방감, 그리고 친구들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벗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불이 너무 좋다고 녹아내리는 중

 

 그래서 작품을 즐겨본 팬들은 이 정도면 마왕이랑 국왕이 서로 친해서, 공주가 아무 생각 없이 휴가처럼 지내고 오라고 윗선들끼리 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예 불가능한 추측이 아닌 것이, 공주의 과거회상으로만 등장하는 집사이자 스승 지모치라는 할아버지 캐릭터가 공주가 아주 어릴 적부터 은근 슬쩍 공주의 사소한 일탈이나 서민들의 즐거움 등등을 소소하게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주가 점점 성장함에 따라, 웬만한 특수부대도 버거울 것 같은 혹독한 훈련, 계속 강요받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점에서 공주의 페르소나가 이윽고 공주를 잠식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이 지모치라는 캐릭터가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능력 좋은(실제로 작중에서 굉장한 강자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지모치는 국왕 또는 마왕에게 긴밀하게 연락하여, 공주가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않게, 그러나 단순한 휴양이면 눈치 빠른(?) 공주가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기에 포로와 고문을 가장해 공주의 페르소나를 벗기고, 잠식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합니다.

 

네, 이것이 '고문' 받는 '포로'와 그 포로를 고문하는 전문고문관들의 모습 입니다.

 

 세상을 관통하는 격언 중 하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한 것,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 보다 못하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페르소나도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과하면 되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또한, 본 작품은 페르소나를 벗고, 편히 세상을 마주하는 법에 대해 아주 코믹하고 재미있게 연출한 작품 같습니다.

 

실제로 작중 주역 고문관인 검은 단발머리 캐릭터 '토쳐'도 개인휴가 때 페르소나를 벗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끝으로, 작중 최애캐이자 몇 번을 영업해도 모자람이 없는 토쳐 짤을 올리고 이번 포스팅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