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스 엑스 마키나 – 사용방법에 따라 독이 되거나 약이되거나!
고대 그리스의 연극기법 중 하나로, 우리나라말로 해석하면 ‘기계장치의 신’이라고 불리는 기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입니다. 특히, 당시에 유명했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썼던 방식이라고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영웅 용사와 대마왕이 싸우고 있는데, 도저히 용사가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정중앙에 거중기 같은 크레인 장치에 몸을 매단 신의 모습을 한 배우가 따란~ 하고 나타나서 대마왕을 무슨 핵쟁이 프로그램 돌리듯 물리쳐 주고, 용사를 치하하고, 극의 갈등을 싹다 해결해 줍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표준국어대사전 정의 참조 :
네? 아니, 이딴식으로 결말 내놓고 티켓값을 받아먹을 생각을 한다고요? 물론, 현대시각에서 보면 이게 뭐야?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리스 신화가 종교로서 받아지고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는...뭐, 신의 갑작스런 개입이 일종의 개연성 중 하나로 인식할 수 있었겠죠. 당시의 시대상과 지금의 시대상은 다르니, 스토리를 아주 수습불가 레벨까지 저질러 놓고 신이 나타났다, 쨘! 하고 끝내는 것이 당시 관객들에게는 잘 먹히는 코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대의 미의 기준과 지금의 미의 기준이 다르듯이!
다만,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은 아직도 현 시대에 너무나 잘 살아서 아주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혹시 알고 계신지요.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에선 더더욱 잘 쓰이고, 더 나아가, 일종의 광고기법으로도 쓰인다는 것을! 뿐만 아니라, 기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극의 극단적이고 순간적인 갈등해결 요소’라는 개념으로 해석을 하다 보면 우리가 익히 보던 개그 프로그램들이나 꽁트에서 쓰이는 것도 넓은 범위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당장 유명한 예시들은 ‘주인공의 필살기’나 ‘주인공이 필살기를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들’이 아주 유명한 예시입니다. 근데 이게 스토리의 빌드 업을 통해서 얻어낸 일회성 필살기가 아니라 매회 같은 패턴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지속되면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날아라 호빵맨]에서 세균맨이 곰팡이 테러로 호빵맨 일당(?)을 괴롭히고, 얼굴이 상한 호빵을 어디선가 나타난 쨈 아저씨가 대가리 교체를 해주고, 호빵 펀치로 쨘! 하고 세균맨을 날려버리는 시츄에이션은 아주 전형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좀 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원형에 가까운 부분은 바로 ‘쨈 아저씨가 정말 뜬금 없이 호빵카를 타고 나타나 새 얼굴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포켓몬스터]시리즈에서도 아주 단골소재죠. 로켓단 일행이 여러 포켓몬을 납치하거나, 주인공 일행을 곤란에 빠뜨려 도저히 갈등해결 상황이 보이지 않을 때, 피카츄가 백만볼트를 날리면 악당들이 감전사도 안 당하고 그저 펑! 하고 터지며 저 하늘의 별이 되면서 그 에피소드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데우스 엑스 피카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린이용 마법소녀물이나 로봇물로 넘어가면 아주 훌륭한 광고수단이 됩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에서 매 화를 대표하는 빌런이 나타나고, 그 빌런에게 고통받는 사람, 또는 주인공 일당의 모습을 보여준 다음에,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마법봉으로 변신! 짜랴란~ 한 다음 정의의 힘으로 마법봉을 휘둘러 (물리적으로)빌런을 처단하고 갈등을 해소시키는 것이 매번 반복됩니다. 로봇(이름하여 용자물)물은 어떻습니까? 매 에피소드 마다 역시나 악당 괴수 또는 로봇이 나타나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고, 주인공 로봇이 나타나 처음엔 별 무장없이 일단 싸워보는데, 파워가 밀립니다. 이렇게 파워가 밀려선 도저히 이 악당을 물리칠 수 없는데, 주인공의 서포트 캐릭터나 일부러 쓰지 않고 기다렸던 필살기를 써서 검이나 총, 망치 등등을 꺼내와 참교육을 시킵니다. 아이들의 눈에는 세일러문의 마법봉이, 로봇들이 통쾌한 일격을 날리는 검, 총, 망치 등이 얼마나 매력적이게 다가오겠습니까? 저 마법봉만 있으면, 저 검만 있으면 온 세상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원콤나버리는 최강의 오브젝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엄마 아빠 손잡고 동네 마트나 문방구(*옛날에 문방구라는 게 있었는데...홀홀홀)를 지나칠 때 세일러문의 마법봉, 로봇장난감이나 그 로봇이 썼던 무기가 보이면 엄마 아빠 옷 소매 찢을 기세로 잡아 땅기는 일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 자체를 아예 사회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다가선 것이 [원펀맨]인 것이죠(2024년기준 최신 연재본 이야기는 이 포스팅에선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보통은 이야기의 결말부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시전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본 작품은 시작부터 ‘사이타마’라는 존재가 바로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자체라는 것을 아주 화려한 연출로 소개합니다. 또한, 그의 행적에 대한 빌드 업을 충실히 쌓아가면서, 개그요소를 포함한 작품 답게, ‘푸쉬업100개, 윗몸일으키기100개, 스쿼트100개, 달리기10km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바나나만 먹으며 정신단련을 위해 여름엔 절대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과 같은 일부러 개연성과 핍진성을 왜곡시킨 부분도 적절히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강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주조연과 빌런들, 그냥 태어날 때 부터 강했다고 건방 떠는 부류들이 진정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앞에서 어떤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도저히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일 때, 사이타마가 진정한 ‘신’처럼 군림하여 그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모습 등을 보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원형 그대로 사용함과 동시에 진짜 매력적으로도 승화시켜 현대인의 입맛에도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 같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을 한 [드래곤볼]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란 개념 자체를 부수는 연출이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대놓고 작품의 제목 부터가 7개를 모으면 그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드래곤볼'이며, '드래곤볼'의 개념 자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입니다. 다만, 맨 처음에 드래곤볼을 사용할 떄는 악당 레드 리본군의 총수의 소원을 저지하기 위해 조연 캐릭터 오룡이 '팬티를 줘!'를 먼저 선창해서 갈등을 풀 수 없게 될 루트를 방지하고, 악당과의 최종국면 자체를 오로지 본인의 실력으로 해결합니다. 후속작으로 가면 어떻습니까? 캐릭터들이 슈퍼파워 업을 해서 드래곤볼을 찾는데 이제는 모험이 필요하지 않고, 세상을 유유자적 날아다니며 그냥 수집하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남발되려고 할 떄, 소원을 들어주는 '신룡'의 능력 밖의 소원은 못 들어준다는 제한을 걸면서, 배지터의 지구침략 같은 갈등을 사전에 해소하는 것이 아닌, 끝까지 몰고가서 등장인물 등의 힘만으로 해결합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전조증세나 복선 따위는 최대한 배제한 채로, 한순간에 등장인물들이 겪던 이야기 내의 갈등을 해소해 주는 기법이니까요. 심지어, 작중 '신'의 존재도 뛰어 넘고, 신의 상위 단계인 '계왕', '계왕신' 조차도 주인공보다 훨씬 못한 파워를 지녀, 그 어떤 요소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작용을 하지 못 합니다. 특히, [드래곤볼Z]의 최종승부 장면에서, 주인공 파티 멤버 중 최약체이자 개그캐릭터인 '미스터 사탄'이 운이 좋아 살아 남았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초특급 아이돌이라는 정보가 사전에 충분히 제공되었고, 당장에 전력 조차도 안 되는 이 최약체 개그캐릭터가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는 희대의 빌드 업은 제가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근데 이제 작품을 보면서 한 숨 밖에 안 나오는 이름하여 ‘양산형 이고깽(*‘이’세계로 건너간 ‘고’등학생이 ‘깽’판치는 장르의 줄임말 입니다.) 물’들이 [원펀맨]의 안티테제가 될 것 같습니다.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대기도 힘들지만,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나 [초인고교생들은 이세계에서도 여유롭게 살아가나 봅니다!] 같은....................정말 안 본 눈을 사고 싶을 정도의 작품들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의문입니다. 왜 얘네들은 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쓰면서도 [원펀맨]이 되지 못 하는 걸까요? 일단은 스토리텔링 자체의 개연성 조차 구성되지 않았고(고대 그리스 연극 조차도 일단 스토리의 개연성은 구축한 다음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쓰거나 안 쓰거나 했답니다), 갈등다운 갈등을 보여주기도 전에 스마트폰이니 슬라임이니, 현대 일본의 국뽕 절여진 지식 등등으로 까딱하고 다 해결해 버리고, 이세계 원주민들을 아주 그냥 유인원보다도 못한 존재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작 작중에서 묘사되는 세계관 형태는 근세 유럽인데, 바로 그 근세 유럽시대 사람 중에 아이작 뉴턴이 살았고, 르네 데카르트가 살았을 텐데, 그러한 존재는 일절 묘사되지 않고, 오로지 주인공이 다 해쳐먹는 시츄에이션. 거기에 뭐...고등학생인데 뭐 일본 총리를 해먹었다는 핍진성을 엘도라도의 쉬발바에 헌상한 것 같은 설정에서 굳이 [원펀맨]과의 차이를 설명하자면...[원펀맨]은 ‘데우스’ 즉, ‘신 또는 신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한 고찰을 합니다. 단순히 신이 인간세상에서 아무런 것도 없이 깽판치는 것이 아닌, 포기하지 않는 인간찬가에 대한 신의 헌사, 신의 존재를 보고도 믿지 않는 대중들 등, 이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화려한 액션 및 연출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산형 이고깽물은 일단 액션과 작화 연출이 아주 저질적으로 심각하며, 이세계로 온 고등학생이 강한 힘을 얻은 것에 대한 아주 가벼운 고찰과, 야시시한 매력을 어필할 뿐인 여캐(또는 남캐)들만이 나타나 이건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단순한 여캐(또는 남캐) 일러스트 종합집 및 성우들 커리어 쌓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들이 됩니다. 저는 이러한 장르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 되려 독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저 삭막한 사회현상에서 노력 없이 현실에서 신데렐라 드림을 이루고 싶은 일부 현대인들의 정신을 양분삼아 반짝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며, 전체 애니메이션의 평균을 깎아먹는 현실이 솔직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이렇게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꽁트 개그 장르에서 주로 쓰이는 기법이며, 꽤나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전성기 때의[개그콘서트]나 [웃찾사] 등등에서 코미디언 들이 짧은 개그를 치며. 정확하게 개그를 끊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음향팀이 적절한 타이밍에 음악을 넣거나, 그 음악에 맞추어 코미디언들이 춤을 추며, 더 이상 그 개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것,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솔직히 절반 이상은 알 것으로 추정되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코너에서 코미디언 김병만 씨가 관객들에게 코미디 또는 멋진 묘기를 어필하고, 적당한 퇴장 타이밍을 조절해 주는 것이 류담 씨의 “나가!”싸대기가 효과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기법의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렇듯,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시에는 이해 안 될 것 같지만, 현대 작품들 속에 시대에 맞게 변해서 곳곳에 그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작품 또는 기획상품의 효과적인 연출이 됨과 동시에 함부로 쓰면 똥망작 급행열차 급 기법이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