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나비(SANABI)] -테세우스의 감동 넘치는 배-
*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게임 산나비(SANABI)의 결말이 포함된 스포일러를 다루고 있으므로 원치 않으시는 분은 추후에 포스팅을 읽어 주시거나, 지금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dYAoiLhOuao?si=t8Ez8PJF2m_wTXDr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상반신은 소요, 하반신은 사람인 흉악한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친 영웅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귀환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영웅의 훌륭한 업적과 그 감동을 길이길이 전하고 기억하기 위해, 테세우스가 항해했던 그 배를 전시하기로 했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아무리 배를 잘 관리했다고 하지만, 썩어가는 판자와 바람에 찢어진 돛 때문에 영웅의 배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배가 점점 낡아갔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고치기 시작했죠. 썩어서 부서지는 판자를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목재로, 돛 또한 똑같은 재질로요. 그러다보니, 이런! 테세우스가 직접 만지고, 그 위에 섰던 배의 원재료는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양만큼은 테세우스가 타고 왔을 때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에게 질문입니다. 이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 여러분들이 어떤 작품을 보시던 큰 도움이 될 만한,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주제일지도 모르는 그 유명한 ‘테세우스의 배’ 입니다. 당장에 이것이 주제가 된 작품만 해도 [공각기동대 시리즈],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로봇 아빠의 역습-], [에반게리온TVA&신극장판 시리즈], [손톱먹은 쥐 이야기], [6번째 날], [바이센테니얼맨], [애플시드], [아일랜드], [니어 : 레플리칸트&니어 : 오토마타], [록맨제로3], [공의 경계], [메탈기어 솔리드5 -팬텀페인-], [박사가 사랑한 수식], [울트라맨(안노 히데아키 감독작)] 헥헥...등등! SF, 판타지를 넘어 여-----러 장르에서 쓰임은 물론, 당장 실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는 예시가 꽤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예시로 들자면, 안타까운 예시 중 하나이지만, 바로 ‘남대문’이 있겠죠. 남대문은 2008년,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말 그대로 전소가 되고 맙니다. 다행이 지금은 다시 재건되어 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이게 과연 그 조선시대의 남대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에 썼던 나무, 물감, 재료 등등이 하나도 없고, 전소되기 전의 모습과도 미묘하게 다르며...또 민감한 이야기지만, 복원작업 중 노이즈도 많았다고 하죠? 그래서 좀 격하게 표현하자면, 남대문 실사이즈 레플리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시에도 실제로 이게 진짜 남대문이냐 아니냐로 꽤나 토론이 이어졌다고도 합니다. 물론, 결론은 법적으로 남대문이다 꽝꽝! 으로 해결시키긴 했지만요.
요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는 정말 한 마디로 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쉽게 가는 방법은 있죠. 바로 위의 남대문 사례처럼 그냥 법적으로 00은 00으로 인정한닷, 꽝!꽝! 하면 되긴 합니다. 근데 예를 들어, 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황에서 생각하자고 했을 때, 이것을 인정하는 또는 인정하지 않을 논리와 판단은 무려 ‘자유’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세우스의 배 논리는 말 그대로 정답을 낼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아니, 결론을 내는 모든 것 자체가 정답이 되는 논리이기 때문에 여러 창작매체에서 단골소재로 쓰일 수 있는 겁니다. 거기에 바리에이션도 다양하게 쓸 수 있기도 하죠. 예를 들어, 몸은 그대로인데 정신이 바뀐다던지, 정신은 분명히 나인데 몸만 바뀐다던지, 몸은 거의 비슷하게 재구성되고, 인격은 그대로 패턴, 또는 인격에 무언가 주입 당해서 서서히 바뀌어 가는 패턴 등등 배의 재료를 바꾸냐, 아니면 배의 선장을 바꾸냐 등의 바리에이션 등이 있죠.
https://youtu.be/wZ6wx0rSL8M?si=9oKvmLAEfpY9MGNd
그런 와중에 최근에 이 소재를 가지고 참으로 여러사람 눈물샘 강도짓을 한바탕 해낸 게임이 출시되어 화제입니다. 그 이름하여, [산나비]이죠. 도트감성 물씬 풍기는 인디게임인데, 게임성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고, 무엇보다 스토리의 빌드 업을 통해, 마지막에 반전을 빡! 터트리는 걸로 승부를 보는 게임입니다. 물론, 테세우스의 배를 인양해서 쓴 만큼, 스토리의 반전미나 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까지는 당연히 아니지만, 제작진의 아주 공을 들이고 또 들인 빌드 업으로 화악 터뜨리는 우직한 전법을 씁니다. 비유를 하자면, [코코]같은 식으로 “아이~ 다 아는 신파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ㅠㅠㅠㅠ왜 눈물이 ㅠㅠㅠㅠㅠ”와 비슷한 방식의 초식을 쓰는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 게임의 빌드 업은 처음부터 플레이어들을 속이는 데 있습니다. 미래의 가상의 조선, 흥미롭게 발전된 기술이 넘치는 세상에서 퇴역군인인 아빠가 수상한 테러리스트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산나비’에 의해 딸을 잃고, 그저 맹목적으로 산나비의 정체를 알아내고, 복수를 실행한다는 프롤로그로 진행을 시킵니다. 약간 [존 윅]1편과 비슷한 비슷한 전개양상을 띄고 있죠.
그리고 도중도중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한 복선과 캐릭터들을 등장시킵니다. 먼저, 주연인 천재소녀 금마리와 주인공이 근무했던 군부대의 후배들이 등장하며, 더블 주인공인 금마리와 퇴역군인 아저씨의 모습은 영화 [아저씨]와도[레옹]과도 비슷한 풍모를 풍기며 진행합니다. 일단은 프롤로그에서 알려준 정보의 흐름대로 플레이어 여러분들은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하면서 진행을 시키는데, ‘대체 얘가 왜 이런 표현을 쓰징?’ 하는 복선들을 툭툭 던져주죠.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 마냥 주의 깊게 살펴볼 여지들을 남겨줍니다.
그리고 대망의 최종장. 알고 보니, 주인공의 딸은 살아있었고, 그 존재가 바로 지금까지 본인이 지키던 금마리라는 천재소녀였습니다. 아~ 여기까진 뻔하지 ㅋㅋㅋㅋ 했는데...아니, 여태까지 금마리가 주인공을 가지고 “아저씨!” 라고 했었어요. 지 애비도 못 알아보는 호로...는 아니고...
주인공은 이미 죽었었고, 전투로봇에 주인공의 인격이 심어진 채로, 로봇 스스로가 본인을 살아있는 인간의 주인공 ‘금 장군’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여태껏 군부대 후배인 줄 알았던 캐릭터들이 왜 자신을 ‘깡통’ 취급했는지, 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변 캐릭터들이 본인을 점점 알아가게 되었는지, 진실을 빡! 터뜨리고, 대망의 금마리가 주인공을 껴안고 대성통곡하는 초특급 우주명장면을 선사합니다. 물론, 이게 감동적이지 않으실 분들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런 면에서 이 게임이 테세우스의 배라는 익숙한 소재를 쓰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모로 배울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미 스토리텔링은 실험적인 것들을 제외하면 수학 마냥 공식화 된 것이 요즘 세태 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수를 치느냐, 아니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냐, 등의 선택을 해야 하죠. 거기서 관객이나 플레이어들은 이미 뻔-히 예상 가능한 전개와 결말 등에 대해서 진짜 극한의 극한으로 예상을 못 하게 하거나 빗겨치거나, 좀 더 핍진성이나 개연성 등의 디테일 싸움으로 관객과 플레이어들을 사로잡아야 하죠. 작가진들 아주 머리터집니다 그냥!
그런 면에서 이 게임 [산나비]는 우직하게 강한 힘으로 뒷통수를 가드하는 상대의 뒷통수를 우직하게 후려치는 듯한(?) 작품이었습니다. 분명 당하는 입장에선 “앜ㅋ 내 뒷통수를 치려는 수는 다 읽혔다곸ㅋ 요렇게 가드하면 어떻게 나올건뎅?ㅋㅋ” 하고 있는데, 가드를 하고 있던 내 손과 팔이 제작진의 우왁진 힘에 의해 되려 내 뒷통수를 때리는 듯한 그런 방식인 거죠. 즉, 뒷통수 치는 플롯으로 설게를 하나, 너무 뻔한 궤도인, 그러나 정확히 노리는 궤도인 테세우스의 배, 거기에 화룡정점으로 무식하게 강한 파워를 지닌 빌드 업, 이 삼박자가 정확히 맞아 들어간 게임의 냄새가 납니다. [코코]도 이와 굉장히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고, 은근히 요즘처럼 스토리의 반전이 너무나도 간파된 시대일 수록, ‘클레식이 왜 클레식인가? 살아 남았으니 클레식인 것이다’ 를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기법들이 속속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금마리 보면 볼수록 고오급 시계의 송하나 생각나는 건 저 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