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머드코어6-루비콘의 화염] -상자속의 양과 양(羊)자역학...?
*본 포스팅 특성상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양 한 마리 그려줘.”
로 시작하는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명장면을 대부분 아실 것입니다. 오랜만에 접하신 분들을 위해 내용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사막 한 가운데 불시착한 비행기 파일럿인 주인공이 불현듯 나타난 어린왕자와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어린 왕자가 대뜸 위와같은 부탁을 하죠. 그래서 파일럿은 종이와 펜을 가지고 대충 양을 그려서 주지만, ‘이 양은 건강해 보이지 않아서 싫어.’, ‘이 양은 내가 원하는 양이 아니야’ 등등 (사람 복장터지는) 거부를 합니다. 바빠 죽겠고, 짜증이 물밀 듯 밀려온 파일럿은 상자를 하나 그려 주고는
“여기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있어.”
라고 (사기)건네주자, 어린왕자는 뛸 뜻이 기뻐하며 좋아했다는 에피소드입니다.
가끔 이런 부분에서 어린왕자에 대한 순수함이라던지, 어른에게는 없는 무언가라던지 등등을 이야기합니다만...저는 여기서 ‘양자역학’의 기초적인 이론에 대해 떠올렸답니다...! 아, 물론, 저는 태생이 문돌이인지라, 양자역학에서 물리적인 부분까지 가면 저 또한 상자를 쳐다보고 ‘헤헷, 고양이 귀엽당’ 하면서 망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까지나 (이과 분들 이마 부여잡는) 문과식으로 이소룡의 Feeeeel~ 로 이해하는 부분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올해 8월, 소울 시리즈 명가인 ‘프롬 소프트웨어’ 개발, 건담의 IP를 소유하고 있는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에서 퍼블리싱을 한 화제의 게임 [아머드코어6 -루비콘의 화염-]에 대해 이 어린왕자의 상자속 양과 접합시킨 포스팅을 해볼까 합니다.
이 아머드코어 시리즈에는 참 재밌는 연출의 전통이 있는데요, 바로 ‘파일럿이나 인간의 모습이 나오지 않음!’ 입니다. 물론, 스토리 오브젝트나 PV 등에서 실루엣 또는 아주 간접적으로나마 나오기는 합니다만, 제일 첫 시리즈를 만들 때 당시 기술력의 부족으로 사람 얼굴모형이나 모습 등을 구현하기 힘들어, 오로지 ‘기업의 마크’나 ‘개인 심볼’만 나오게 해놨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기계와 로봇들의 향연일 뿐이죠.
오히려 그러한 연출이 획기적인 부분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어필이 되어서 아머드코어는 시리즈를 거듭해도 오로지 기업의 마크나 개인 심볼 등으로만 등장시켜, 하나의 낭독극 같이 스토리를 플레이어들에게 보여줍니다. 영상통화가 없던 시절, 오로지 전화만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러다가 이번 [아머드코어6]가 엄청난 흥행을 함과 동시에, 출연한 성우진의 열연(퀵 퀵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슬로우)과 곱씹으면 반전 넘치는 스토리 등으로 인해 아무리 캐릭터의 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등장 캐릭터들에게 여러 매력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이 아래의 사진에서 보이는 ‘다펑냥냥’을 비롯하여, ‘올 마인드’ 등의 의인화 등이 트위터(=X), 픽시브 등등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참 재미난 것은, 개발사인 프롬 소프트웨어나 퍼블리셔인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 등에서는 그 어떤 사람캐릭터에 관해 공식 일러스트를 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그나마 PV에 스쳐지나가 듯, 실루엣 형태로 알기 힘들게 그려 놓은 것이 다였죠. 그런데 그림에 소질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은 정말 어린왕자의 상자속 양처럼 플레이를 하면서 조우한 캐릭터들의 목소리와 연기톤, 작중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기존에 존재하던 캐릭터들의 패턴을 요령껏 조합해 2차창작을 하거나, 단순히 기업의 마크를 모에화(萌え化)하는 식으로 저마다의 상자 속 양을 ‘꺼내 본 것’ 입니다. 그런데 상자 속에서 뛰쳐나온 양이 뭇 사람들이 상상하던 이상적인 양과 많이 흡사했기에, 무수한 좋아요와 리트윗의 향연이 뿜어져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조금 머리가 아파올지도 모르는 양자역학의 기초적인 논리를 설명할 때 자주 가지고 오는 이야기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대략, 강력한 독극물 장치가 있는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 1시간 뒤 50%의 확률로 그 독극물이 상자내에서 뿜어져 나온다면 1시간 뒤에 고양이는 살아있을까, 죽어있을까? 에 대한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실험(思考実験:사물의 실체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로 시뮬레이션 하는 실험. 즉, 사람의 삶을 실험하겠다고 할 때, 몇 사람 붙잡고 몇 십년 동안 스토킹하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닌, 게임 [심즈] 같은 것을 대신 플레이 하면서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입니다. 여기에서 다른 머리 아픈 것은 잠시 제쳐 두고 제일 중요한 키워드인 ‘관측’에 대해서 생각을 주로 하셔도 최소한 이 포스팅을 보시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양자역학에 대해 강의를 할 짬의 ㅈ도 안 되니까 안심하십시요.
즉, 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의미하는 바는 ‘관측’되기 전에는 몰?루 라는 것입니다.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오로지 ‘관측’이 되면 ‘결정’이 된다는 겁니다. 좀 더 친숙한 소재를 가지고 오자면, 원효대사의 해골물 에피소드 또한 이와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동굴 속 짙은 어둠 가운데서 잠에 들지만, 목이 너무 말라서 도중에 잠에서 깨고, 손으로 더듬거리다 잡힌 바가지의 물이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을 수 없었지만, 자고 일어나 빛이 들어오고 물의 정체가 ‘관측’이 되니, 이게 웬걸!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지 않았겠습니까? 그대로 원효대사는 새벽부터 구토를 하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다들 아실텐데, 해골물이 ‘관측’되기 전에는 그렇게 달고 맛있는 물로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원리 중 하나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그렇게 한국땅에서는 아인슈타인과 리처드 파인만보다 약 1300년 전부터 양자역학 개념을 깨달은 분이 계셨답니다. 해골물은 국뽕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 듯, 아머드코어에서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왕자에게 ‘관측되지 않은’양을 선물해 주었기에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겁니다. 오히려 아머드코어에서 별안간 시리즈의 전통을 깨고, 주인공 캐릭터나 여러 얼굴 없는 캐릭터의 공식 일러스트를 내는 순간, 어떤 플레이어들에게는 그것이 원효대사의 해골물 마냥, 어제까지만 해도 ‘다펑냥냥 날 가져욧!!’ 하면서 찬양했던 달고 시원한 물이 하루아침에 해골 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은근히 이 논리는 여러 2차창작이나 작품을 논할 때 소소하게 발견 되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오늘 제 포스팅을 보신 분들도 혹여나 이런 원리로 작용하는 콘텐츠가 없는지 ‘관측’ 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